공공이익 목적땐 처벌 못해"
[시민일보 = 박소진 기자] 타인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표현 방식과 맥락 등에 따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이라면 위법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정치인을 겨냥해 동성애자임을 암시한 글을 올린 누리꾼의 행위를 무죄로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 3일 확정했다.
A씨는 2021년 8월 블로그에 성평을 주장해온 시민단체 대표이자 정치인 B씨를 겨냥해 "레즈비언의 관계에서 남성 역할을 하는 '부치'는 남자 역할을 해야 하므로 모든 남성을 적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검찰은 해당 글이 B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암시했다고 보고 A씨를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타인의 동성애 성적 지향을 암시하거나 밝히는 표현을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 적시로 볼 수 있는지와 해당 발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위법성이 조각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B씨가 자신이 속한 단체의 채팅방에서 성적 지향을 밝힌 적이 있더라도 이는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진 것이며, B씨의 성적 지향 자체를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관심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가치중립적 표현이므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다.
또 B씨가 사회구성원의 성 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온 만큼 자신의 성 관념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해당 발언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위법서잉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론적으로 무죄를 확정하면서도 동성애자임을 드러낸 A씨의 표현 자체에 대해서는 원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이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이 곧바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표현이 될 수 없고, 특정한 성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부치'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에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존재한다"며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적시해 인격·명예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등 표현 내용이나 방식, 맥락에 따라서는 사회적 가치·평가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A씨의 게시글에 대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에 기초해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그 때문에 피해자가 모든 남성 집단을 적으로 생각한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이라며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피해자가 제한된 공간에서 스스로 성적 지향을 공개한 것과 제3자가 이를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이전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단체 내부에서 밝힌 사실이 있더라도, 자신이 안전하고 신뢰하는 공간에서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타인에 의해 일반 공중에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이 드러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완화될 경우 같은 표현에 대한 법적 판단도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B씨가 성평등과 관련한 공적 활동을 해온 정치인으로서 검증과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고, A씨의 게시글 역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게시글이 작성된 당시 성별 갈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점과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A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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