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멸차게 뛰어보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9-03-29 20: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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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원) 미국의 팔로알토(Palo Alto)라는 작은 도시는 유사한 규모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소위 전문직 등 사회에서 비교적 앞서가거나 윤택한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세계 최첨단의 벤처기업들이 모여있는 실리콘밸리와 스탠포드라는 초일류 대학이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선 이곳을 전세계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커피 한잔에 스치는 인연도 박사급 두뇌들이고 보면 어느새 나 자신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사뭇 점잖아 지며 어깨에 힘을 주게 된다.

팔로알토 주민 구성 비율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살아가는 방식도 캘리포니아의 일반적 여유로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레스토랑, 편의점 그리고 마켓 등에서 접하게 되는 분위기도 좀 다른데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상이함의 실체를 굳이 한국말로 옮겨보자면 '발악적 생존투쟁'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쌀을 얻기 위한 일차적 삶의 투쟁이 아닌 ""건강""이라는 단 한가지 목적에 광신하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들 상민(常民)의 도(道)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들은 건강에 관해서는 광신도다! 세상을 다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던가? 이미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우월한 자리에 올라있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관심은 역시 '행복의 연장'이다.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성공을 위해 투자했으니 그 달콤한 과실을 건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누리고 싶어할 것 이라는 점에서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정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건강에 관한 관심은 내가 볼 때 '노력'의 단계를 넘어 '투쟁'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때로는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이 오히려 이들의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걱정거리가 생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숨을 몰아 쉬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트랙을 돌고 있는 이들의 운동습관은 건강관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다. 건강 관리는 운동 마니아뿐만 아니라 절제된 식습관 문화도 만들어 냈다. 평소 한국에서 소주한잔에 삼겹살을 무척이나 즐겼던 내가 바라고 고대했던 미국적 삶은 이게 아니었다! 이곳에 오면 저렴하게 그것도 상질의 고기문화(?)를 즐기게 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캘리포니아에서 그 흔하다는 바베큐가 이곳에 오니 온데간데 없고 풀만 즐기는(?) 채식주의적 문화로 고통 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은 이곳의 고기문화를 너무도 퇴행적(필자의 관점에선 그렇다!)으로 만들어 버렸고 나의 식습관도 어쩔 수 없이 팔로알토의 시류에 적응해 가고 있다.

흡연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건강과 관련해서 제일의 공적으로 간주되는 담배가 이곳에서 용인될 리가 없다. 검정 물감에 하얀 물감 한 방울이 떨어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반대로 하얀 물감에 검정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지면 바로 티가 나는 것처럼 흡연자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면 흡연자가 겪게 되는 후 폭풍이 만만치가 않다. 가끔 숨어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담배에 관해서는 관용적 정서란 없다. 흡연자들에게 이들이 보내는 시선은 이해하지 못할 구시대적 악습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야멸찬 냉대와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이곳은 건강과 관련해서는 관용과 다문화가 수용되지 않는 단일문화적 구조의 사회인 것이다.

건강에 관한 팔로알토인들의 지독한 투쟁적 노력은 일견하기에는 광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관용과 포용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실천해 가는 수준 높은 시민문화가 때때로 건강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비타협적이고 폐쇄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이들의 건강 광신도적 행태는 단순히 그들만의 행복을 지속하고 자기욕구만을 실현하기 위한 이기적 행동의 연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라는 세간의 표현처럼 사회적 역할과 의무 그리고 책임을 다하기 보다는 다른 계층과 사회적·문화적으로 격리시키고 자신들만의 우월하고 윤택한 삶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양식을 편협한 시각에서 비판만하기 보다는 충분히 이해하고 그 장점을 취사선택해서 수용할 수 있도록 열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고 제일의 덕목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치열함""이다.

한국도 웰빙(Well-Being) 열풍 속에 건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생활습관이 변화되는 건강문화의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산업화 시대 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에 집중했던 대중적 관심은 경제수준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질적 차원에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국내의 조깅, 인라인, 자전거 열풍 등 운동하는 생활의 일반화와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의 조성은 이제 세계 어느 수준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며 동시에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한국의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부족함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팔로알토인들이 보여주는 치열함이다. 필자도 건강과 운동에 관한 결심에 있어서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의 고비를 넘기가 어려웠다. 경험적으로 아직까지 한국에선 건강은 사회적 성공, 학업의 성취 등 개인의 일차적인 관심사와 목적에 대비해서 이차적인 문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시간과 노력은 바로 성공을 위한 투자의 핵심이다! 미국 학생들이 한국의 학생들보다 대학과 대학원 수준에서 월등한 성취를 보이는 것은 바로 청소년기부터 집중적으로 건강에 투자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체력을 바탕으로 마음껏 자신의 목표에 매진할 수 있는 개인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이곳에서 보여지는 건강에 대한 집착은 연령과 계층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치열함이 인생의 목표와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오늘 한번 온 가족이 건강 광신도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책상에 묶여서 그리고 서류더미에 눌려서 자신과 가족의 진정한 행복을 잊고 살았던 우리들에게 건강에 대한 치열한 노력을 불어 넣어보자.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땀방울의 상쾌함이 삶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또 다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기회와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다. 오늘 한번 야멸차게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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