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개항장 100년 역사 ‘한눈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10-08 18: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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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사사진전 역사자료관서 20일 열어 ‘사진으로 보는 인천 개항장 풍경’이란 주제의 제5회 인천역사사진전이 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인천시 역사자료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사진전은 그동안 개최됐던 ‘근대의 이민과 인천’(1회),‘인천 築港의 역사’(2회), ‘광고로 보는 인천근대’(3회), ‘테마로 보는 인천근대’(4회)와 관련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었던 인천 개항장을 다시금 재조명한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미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도 통상(通商)을 요구해 오기 시작하자, 인천은 수도 한양(漢陽)에 이르는 입구[咽喉之地]에 위치해 한국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병인양요(1866)로부터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과 강화도조약체결(1876), 열강과의 수교(1882~), 임오군란(1882), 인천 개항(1883)을 거쳐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제물포해전)과 현대의 인천상륙작전(1950)에 이르기까지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은 이를 대변해준다.
이것은 시대적 전환기에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인천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인천이 갖는 지리적, 입지적 중요성이 곧 역사적으로도‘선구자’가 되고 그러면서 선구자로서 갖는 여러 가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면서 이를 극복해가는‘실제적인 기능까지 수행’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1883년 인천 개항과 더불어 개항장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들면서 각국의 거류지가 형성됐다. 일본조계, 청국조계 및 각국공동조계가 생겨났으며 각국의 상, 공업시설과 종교, 교육, 문화시설들도 빠르게 설립됐다.

개항 초기는 주로 일본, 청국, 각국 조계지와 번화한 거리 모습이 각국 영사관과 함께 담겼으며, 1910년 이후로 가면서 점차 홍예문, 월미도와 인천역 그리고 인천항과 동양유일의 갑문과 도크 등 일본인에 의한 건설된 소위 ‘식민도시 인천’을 관광차원에서 홍보하고 근대화를 선전하는 기념물들이 주로 사진엽서에 담겨졌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 팔미도와 소월미도 부근에서 발생했던 제물포해전에서 자폭하는 러시아 함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는 지금껏 유통되고 있어 일본인들이 당시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자 얼마나 많은 양의 승전기념 엽서를 생산했는지 짐작된다.

이러한 전환기 인천의 여러 변화 모습을 사진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인천의 근대사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마련한 자리이다.

개항장 인천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과 근대건축물로 즐비했던 개항장 그리고 거리풍경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진과 역사적 설명을 통해 100년 전 그 역사 속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 느낌을 갖는다면 의미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박승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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