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토지 1,386㎡(3억6710만원 상당)를 지난해 12월 2일 기부한데 이어 지난 20일 현금 자산 1억 3300여만 원을 기부함으로써 모두 5억 10만 원의 장학금을 출연했다.
홍씨의 가족들 역시 모교를 향한 그녀의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을 알기에 그 뜻을 존중, 받들여 고귀한 의미를 더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녀는 인천창영초등학교를 거쳐 1942년 인천여자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창시절부터 어진 품성과 선행뿐 아니라 뛰어난 인재로서 타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그녀는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대학에서 유학하며 약학을 전공했다.
이후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양장점을 운영하며 생활하면서도 여초 김응현 교사에게 사사한 서예와 한국화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가져 동인을 결성할 정도로 활발하게 창작 활동했으며, 국내뿐 아니라 뉴욕,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도 동인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지경을 넓히며 살아왔다.
언뜻 보면 화려한 삶을 누린 듯 보이는 홍씨는 근검과 절약을 삶의 근간으로 삼아 70년을 한결같이 살아왔다.
언제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을 뿐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았으며, 남들에게 관대하되 정작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신! 이것으로써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 왔던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과하게 욕심내지 않으며 평생을 살았다.
현재 거주하는 용인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창영동에서 연탄난로를 사용하며 겨울을 났을 정도로 삶에 대한 그녀의 소신은 뚜렷했다.
그러면서도 모친이 100세를 누리시고 작고하실 때까지 극진히 봉양한 효심 깊은 딸이었으며, 동생들에게는 한없는 사랑으로 일관한 천상 맏이였다.
또한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도 공경하는 마음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으로 인해 여러 선후배들이 입을 모아 그 인품의 돈후함을 칭찬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였기에 그토록 선뜻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인천여고 이팽윤 교장은 홍성숙씨의 뜻을 받들고, 그녀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녀의 이름을 딴 '역란 홍성숙 장학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며 향후 이 장학기금은 우수 인재 영입 및 육성을 위해 활용할 방침이다.
문찬식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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