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주민번호등 신상 제공땐 사기적용도 어려워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인사드렸던 000입니다. 000지역 내 뉴타운과 관련해 좋은 매물이 있어 정보를 알려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지난 수년간 텔레마케팅(전화통신판매)을 이용한 물품 판매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전에 단순히 전화를 걸어 소비자들에게 물건 구매 및 투자를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 들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텔레마케터들은 상상치도 못한 다양한 수법들을 이용, 접근하고 있다. 이는 점점 더 지능화된 수법으로 호시탐탐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을 노리고 있는 것.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텔레마케팅 피해와 접수된 소비자상담은 1357건으로 3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피해상담 1357건 중 확인된 536건의 피해금액은 총 9억9657만원에 이르며 이 중 소비자들이 대금을 결제해 직접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금액은 4억7976만원에 달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무원 준비생 두 번 울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 모(29)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서씨는 집에서 공부를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A업체에서 쉽게 공무원이 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몇 분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시험 응시는 1년에 5번 정도의 기회가 있으며 우리 업체에서 제공하는 교재를 이용해 공부를 할 경우 필기시험 합격은 문제가 없다는 것.
이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서씨는 이내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서씨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50만원에 달하는 교재를 구입했다. 그러나 서씨의 기대는 교재가 도착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서씨는 “교재 내용이나 구성이 너무나 형편이 없었고, 환불을 요구하자 도리어 다시 반품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또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하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며 “취업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좋지도 않은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취업 준비생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텔레마케팅 사기… 경로효친 사상도 없어
텔레마케팅 사기에는 경로효친이란 단어는 생소하다. 오히려 나이 많은 어른들의 지갑 속에서 돈을 꺼내기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더 편하고 쉬울 뿐이다.
이 모(68)씨는 지난 5월께 한 여성으로부터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이벤트 당첨으로 인해 건강보조제를 받게 됐다며 주소와 주민번호를 요구했고, 이씨는 공짜상품이라 받아도 손해는 없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알려주게 됐다.
이후 이씨에게 건강보조제가 배달됐고, 공짜라는 생각에 즐겁게 먹고 있던 중 3일이 지난 뒤 20만원의 물품 대금고지서가 날아왔다.
이에 이씨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상품을 구입하기로 하고 주민번호와 주소를 알려준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위약금을 요구하며 물건을 구입하라는 협박까지 했다.
◇학교 동문까지 사칭해
최근 대학 동문을 사칭하며 소비자들에게 접근해 물건을 판매하는 수법도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서울의 모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정 모(30)씨는 최근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00학번이라고 소개하며 “얼마 전 출판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실적이 좋지 않아 직장생활이 가시방석입니다”라면서 “후배 한번만 도와주세요. 선배님”하고 잡지 구매를 요구했다.
이에 정씨는 어렵게 취직한 후배가 회사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에 30여만원에 달하는 잡지를 구입했다. 그러나 몇 달 뒤 후배들이 주최한 홈커밍데이에 참석한 정씨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을 후배라고 소개했던 사람은 정씨가 졸업한 학과는 물론 대학도 다니지 않았던 것이다.
정씨는 “많은 동기와 후배들에게 확인했으나 그런 사람은 없었다”며 “요즘 대학 동문을 사칭해 물건을 판매하는 사례가 있다고 들었지만 그 피해 대상이 내가 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집 방안 구석에 쌓여있는 잡지를 볼 때 마다 내 자신이 바보 같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밝혔다.
◇텔레마케팅 사기 처벌 쉽지 않아…소비자들 주의 필요
이렇게 갈수록 지능화되고 대담해진 수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지만 처벌 또한 쉽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기성이 짙은 판매 방식임에도 소비자들이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물품이 집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하기에는 어렵다는 것.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전화 통화 시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스스로 알려주고 있고, 돈을 받고 물품이 배달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처벌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단 물건을 받고 반품이나 계약해지 등이 안 될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반품 시 불친절한 경우는 많이 있지만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반품 및 계약 해지 등을 확실히 이행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소비자들의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문기관들을 조언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방문판매는 적어도 상품을 보고 판단하지만 텔레마케팅은 그렇지도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많다”며 그것도 평소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품들을 전화 한 통으로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지 않을 물건이라면 진작 전화를 끊거나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혀야 한다”며 “정말 필요한 물품이라 하더라도 전화상에서 계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는 텔레마케팅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정확한 설명을 듣고 구매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며 “특히 공짜당첨이 됐다고 알려올 때 신용 확인을 한다면서 신용카드번호 및 신상정보, 유효기간을 물어볼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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