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선 경찰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 경찰 수뇌부가 줄줄이 중징계를 받는 등 국민의 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탓도 있지만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심야시간 수많은 취객들을 상대하며 심심치 않게 욕을 듣고 때론 멱살을 잡히며 얻어맞기까지 하는 등 수난받는 공권력의 현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매 맞는 경찰’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돼 버린 지 오래라서 웬만한 사건이 아니고선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 현실에서 “도대체 ‘민중의 지팡이’가 왜 ‘동네북’으로 전락했는지 처참할 지경”이라는 하소연이다.
▲경찰 욕설·폭행 다반사
취객들의 경찰관에 대한 욕설과 폭행은 심야시간 경찰 지구대에 들어가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특히 취객들의 횡포는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철이면 절정에 달해 여름철 야간근무 때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달 9일 새벽 3시께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방배경찰서 소속 최 모 (49) 경사는 조카뻘 밖에 되지 않는 박 모(28)씨에게 얻어맞았다.
부부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박씨는 “무슨 참견이냐”며 주먹으로 최 경사의 얼굴을 때렸다.
서울 은평경찰서 불광지구대에 근무하는 김 모(42) 경사와 고 모(27) 순경도 지난달 5일 밤 9시10분께 은평구 불광동의 한 카바레에서 한 여성이 폭행을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피의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김 경사와 고 순경은 폭행 피의자인 박 모(49)씨와 문 모(46)씨를 지구대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멱살을 잡히고 폭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두 경찰관은 피의자들로부터 심지어 얼굴에 침 세례까지 맞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경험해야 했다.
이 처럼 국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도를 넘는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빈번한 일이지만 취객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 역시 종종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오전 8시35분께 정 모(41)씨는 아침 일찍부터 술에 취해 구로경찰서 오류지구대를 찾았다. 정씨는 윤 모(32)경장에게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는 등 무려 1시30분간 난동을 부렸다.
9차례에 걸친 공무집행 방해 전과가 있는 정씨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일이 없는 날이면 지구대에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며 오류지구대 경찰관들은 정씨 말만 나와도 혀를 내둘렀다.
▲순찰차 부수고 지구대에선 난동
경찰에게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것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경우 폭행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순찰차나 경찰서 내부 집기류 등을 부수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지난달 17일 오후 5시께 우즈베키스탄인 S(27)씨는 자신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갔다(차였다)며 술에 취해 주차된 중부경찰서 을지지구대 소속 순찰차의 무전기 안테나를 망가뜨리고 유리창을 발로 차 깨뜨렸다.
19일 오후 4시20분께는 함 모(37)씨가 길거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을 경찰이 제지하자 관악경찰서 관악지구대 소속 순찰차의 본넷에 올라가 차량을 찌그러뜨렸다.
또 지난 25일 밤 11시께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적발돼 강남경찰서로 연행된 이 모(31)씨는 김 모 경장을 폭행하고 책상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인권 운운… 사법처리도 힘들어
이렇듯 일선 지구대에는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취객들로 인한 소란행위가 끝이 없다.
순찰차 본넷에 앉는 사람,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 사람 등 112 신고 중 취객들에 의한 소란행위 신고가 전체 신고건수의 60%에 이르고 있다.
경찰은 이런 취객들의 행패에도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당하고만 있는 실정.
자칫 잘못 대처했다가는 피의자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경찰은 땅에 떨어진 ‘공권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내 집 드나들듯 파출소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취객들에게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 경찰에게 욕을 하는 등 사소한 공무집행방해 행위라도 사법처리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4월18일 술에 취해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부은 염 모(31)씨를 모욕죄로 입건했다.
하지만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무조건 사법처리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루에도 이 같은 일이 수차례 발생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취객들은 술이 깨면 ‘술김에 그런 것’이라며 선처를 부탁, 솔직히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경찰은 설명한다.
더욱이 출동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이라도 할라치면 인권을 운운하며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들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글을 올린다.
이렇게 되면 해당 경찰은 경위서를 작성하는 등 내부 감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제압이 쉽지 않다고.
서울의 일선서 지구대 관계자는 “자신이 폭행을 하거나 몸을 주체하지 못해 넘어지고도 오히려 경찰에게 맞았다
고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럴 때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자괴감마저 든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경찰이 취객 등에게 폭행을 당하고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부쩍 늘면서 일부에서는 ‘땅에 떨어진 공권력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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