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 27년째인 그에게 요즘 어울리지 않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서툰 손놀림으로 도공무원노조 홈페이지 등 공무원들이 애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부지런히 뒤적거리는 것.
그는 “오늘은 누가 당했나, 누구의 비위가 올라왔나, 나는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며 “이 때문에 예전과는 달리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청 간부 공무원들이 최근 인터넷 게시판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동료들의 부정비위 사례가 가감없이 올라오고 부풀려진 인신공격성 ‘악플’이 뒤를 이으면서 심적 고통을 못이겨하는 공직자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까지 번지고 있다.
24일 도와 경기도공무원노조 등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22일 노조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비위 구설수에 오른 L씨(3급)의 인사조치를 김문수 도지사에게 건의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가청렴위 제소 방침을 밝혔으며, 23일에는 자치행정국장 등과 면담까지 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14일 도공무원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ID ‘말단직원’의 글로 부터 시작됐다.
글은 L씨가 ▲관사 입주예산 편법집행 ▲관용차량 사적 이용(운전원 1명은 억압에 못이겨 명퇴신청) ▲수시로 휴일날, 일과 후 회의 소집 ▲툭하면 인격모독성(면서기만도 못하다 등) 발언 등을 일삼고 있다고 폭로했고, L씨를 질타하는 댓글이 폭주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노조는 지난 16일 L씨를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인사조치 등을 건의했지만 김 지사는 사안이 경미하다고 판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폭로로 궁지에 몰린 사례는 이외에도 다수다.
지난 21일부터는 경기북부의 한 사업소의 C씨(5급)가 강사들로 부터 뇌물을 받고 있다는 악성 글이 노조 홈페이지를 도배하고 있다.
C씨는 인사전횡과 뇌물수수, 공문서 위조 등을 했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제2청 감사관실은 이와 관련, 경찰조사에서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음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난해 12월에는 도청 A씨(5급)가 한 언론사의 편집위원으로 등재됐다가 각종 인신공격을 받으며 사퇴압력에 시달렸는가 하면 보건직 인사 등과 관련한 최고위직 공무원의 청탁비리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한 ‘변절자’라는 등 김문수 도지사를 직접 겨냥하는 인터넷 악플도 심심치 않게 게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관련 도의 한 공무원은 “업무에 도움이 되고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의 사이트가 아니면 말고 식의 비리폭로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조직의 단합을 저해하고 있다”며 “실명제를 통해 익명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공무원은 “실명제 등을 한다면 공직사회 뿌리깊은 관행과 비위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근거없는 음해는 안되겠지만 사실상 게시판 등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신빙성이 높은 글들이 많다”고 실명제 도입을 반대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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