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까하시 노부로’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의 보다 용이한 식량수탈을 위해 세워진 권업모범장(후에 농사시험장)에서 26년간 근무하다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한 연구관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당시 ‘다까하시 노부히로’의 연구는 조선의 농업작물에 관한 북, 남방 한계선과 생육일수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으며 사진으로도 남겼다.
1945년 이후 권업모법장은 오늘날의 농촌진흥청으로 바뀌었으며, 지난 9월 농촌진흥청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기구의 하나였던 권업모범장을 미화하는 ‘한국농업 근대화 100년’이라는 기념행사를 열며 ‘다까하시 노부로’특별 전시전을 가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수원시 학예연구사인 김준혁 박사는 “우리나라 농업역사의 가장 큰 인물 이라고 볼 수도 있는 정조대왕을 배제한 농촌진흥청의 ‘다까하시 노부히로’상설전시관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심경을 밝히며 “농촌진흥청에 대한 항의방문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다까하시 노부로’ 유물 유치 담당자는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에 관한 기록을 남길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을 하며 “다까하시 연구관이 기록한 당시의 한반도 전체의 농업에 관한 작물의 디테일한 기록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까하시 상설 전시관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또한 “2002년 농업과학박물관을 설계, 전시할 당시에도 정조임금의 농업관련 성과물 전시는 고려해 보지 않았다”고 하며 “당시 다까하시의 조선농업 연구목적이 무엇 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역사적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으로 내가 답할 바는 아니다”고 해 다까하시 노부로의 연구 목적이 조선에서의 식량수탈을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을 회피했다.
한편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1795년 수원에 만석거를 지었으며, 그 옆에 대규모 국영농장(대유평)을 운영했다. 덕분에 당시의 전국적인 흉년에도 불구하고 수원만은 정조대왕이 주창한 저수지농법으로 풍년을 기록했다.
이후 3년 뒤인 1798 윤건능 옆에 ‘만년둔’ 저수지를 건립 했으며 1799년에는 오늘날 농촌진흥청이 위치한 바로 옆에 ‘충만제’를 건립, 우리나라의 농업 발전사에 지대한 공을 끼친 임금이다.
수원=/한연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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