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역길 따라 걸으며

시민일보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6-08-11 14: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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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이천호국원 관리과 김나영



8월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계절이 오면, 국립묘지의 공기는 여느 때보다 깊고 엄숙해집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묘역을 왕래하는 발걸음에는 평소보다 더 깊은 정성과 정적이 실립니다. ‘빛을 되찾았다’라는 뜻의 광복(光復), 그 고귀하고 찬란한 두 글자 뒤에는 이름을 남기지도 못한 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영웅들의 피와 눈물이 새겨져 있습니다.

평소처럼 반복되는 출근길이지만 광복절을 앞둔 지금은 그분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자유로운 조국의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일상의 뿌리임을 하늘을 마주하며 깨닫습니다.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이 업무가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이따금 건네는 참배객의 짧은 감사 인사 한마디에 여름날의 피로는 씻은 듯 사라지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 있는 곳인지 다시금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책이나 박물관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국립묘지에서의 매일은 역사를 ‘살아있는 숨결'로 느끼는 시간입니다. 국립묘지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국립묘지 참배는 엄숙하고 무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마주한 국립묘지의 모습은 그저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만이 감도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가 보고 싶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찾아오시는 할머니, 생전 좋아하셨다며 캔커피와 자양강장제를 챙겨 온 중년의 자녀분들,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공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와 묘역에 가꿔진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나비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든 마음으로 가깝게 느끼고,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었구나’라고 느낍니다. 

 

조국을 지킨 영웅들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그분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정성껏 가꾸는 일, 고요하지만 위대한 이 유산을 지켜나가는 것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오늘도 하루를 버텨봅니다.

다시 찾아온 8월 15일, 태극의 물결이 바람에 한껏 나부끼는 묘역을 둘러봅니다. 이 땅에 빛을 되찾아준 이들에게 바치는 우리의 정성이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제 자리에서 맡은 소임을 묵묵히 해나갑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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