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경쟁이 출산율 30% 앗아가, 사회적 대타협으로 공존의 길 열어야

시민일보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6-09-06 12: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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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인 저출산 문제의 핵심 기저에 ‘사교육 지위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제시되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경제정책연구센터(CEPR)·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동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지위 경쟁 그리고 한국의 저출산’ 논문에 따르면, 자녀의 교육 성취를 남의 아이와 비교하는 이른바 ‘지위 경쟁(Status Contest)'이 없었다면 1970~1975년생 여성의 평균 자녀 수는 실제 1.92명에서 2.45명으로 약 28% 늘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과도한 사교육 경쟁이 없었다면 출산율 하락 속도가 지금처럼 가파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뼈아픈 진단이다.

‘지위 경쟁(Status Contest)’이란 부모가 자녀를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나은 교육적 성취를 얻기 위해 교육비를 경쟁적으로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증폭되었고, 결국은 부모들 스스로 하여금 “적게 낳아 올인하라!”라는 선택이 아닌 의무를 강요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사교육 경쟁이 저소득층의 삶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8.4%에 달해, 소득 상위 20% 가구(5.1%)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먹고살기 빠듯한 상황에서도 자녀의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서민들의 고통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이렇듯 새삼스러운 진단도 아니다.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이 출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질병(痼疾病)이다.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방치(放置)하고 방관(傍觀)하며 방기(放棄)해 왔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마다 ‘사교육비 경감’을 외치고, ‘공교육 정상화’와 ‘입시 개혁’을 약속했지만, 망국병(亡國病)인 사교육비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입시 경쟁은 ‘4세·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되레 유치원과 초등학교까지 역주행하며 내려가고 있다.

이런 교육 경쟁을 그대로 방임(放任)한 채 출산장려금과 현금 지원만 늘린다고 저출산을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막대한 저출생 대응 예산을 투입해 육아휴직을 확대하고 아동수당과 부모 급여 등을 늘려왔지만 아이 한 명을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교육비 부담만 커지고, 부모들이 “남들만큼은 시켜야 한다.”라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출산지원금으로 출산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사교육을 부추기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는 한편, 특정 대학과 학벌이 취업과 임금 격차로 직결되는 구조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주거·일자리 등 저출산 대책과 교육 개혁을 따로 떼어놓고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걱정한다면 과도한 교육 경쟁에 묶인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만 한다.

그동안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육아휴직을 확대하고 아동수당과 부모 급여를 늘리는 등 출산과 양육 환경 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러한 지원은 가계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데 분명히 필요한 조치이다. 하지만 ‘지위 경쟁(Status Contest)’이라는 구조적 덫이 존재하는 한, 현금성 지원으로 창출된 가계의 여력조차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초중고교생의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27조 5,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별 가구 입장에서는 자녀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르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모두가 자원을 낭비하며 아무런 격차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저출산 극복의 패러다임(Paradigm)을 한 단계 더 근본적인 구조 개혁으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지위 경쟁 그리고 한국의 저출산’연구팀은 과도한 사교육 지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고소득층의 사교육 지출에 과세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출산, 보육에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명문대 진학과 양질의 일자리라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일종의 ‘의자 뺏기’ 경쟁이 벌어지는 한 사교육 수요를 강제로 줄이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 사회가 다양한 직업을 존중하고 특정 집단이 자원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야만 한다. 그러려면 공교육의 질적 혁신과 노동시장의 체질 개선은 물론 출산장려책과 함께 사교육을 부추기는 사회적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정공법(正攻法)’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우선 공교육의 질적 혁신과 대입 제도의 개선을 통해 과열된 서열 경쟁의 압력을 낮춰야 한다. 특정 명문대 진학만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현실에서는 어떠한 입시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사교육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 대학 간 서열화를 완화하고, 교육 현장에서 상대평가의 비중을 줄여 아이들이 과도한 성적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울러 고소득층의 사교육 지출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보육과 출산 장려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시장의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학벌이 곧 임금 격차와 생애 소득으로 직결되는 단선적인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직업의 가치를 존중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기술과 직업 경로를 통해 충분히 재정적 안정을 누리고 성공할 수 있는 다변화된 노동시장 경로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특정 집단이 자원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고, ‘기회의 사다리’를 넓히는 것이 궁극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 닥친 강력한 도전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비하고 구조를 개혁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주거, 일자리, 출산 지원 대책과 교육 및 노동 개혁은 결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소모적인 무한 경쟁의 굴레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제는 정부와 학계, 그리고 시민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경쟁’에서 ‘공존’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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