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다산실학연구원, "지역학으로서‘康津學’ 모색"

정찬남 기자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16-11-08 16: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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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설 강진다산실학연구원 제18회 학술대회 개최
[강진=정찬남 기자]강진다산실학연구원(원장. 김도형)은 지난 4일“지방사 연구와‘강진학’에 대한 모색(2) -고려시대 강진과 강진학-”주제로 제18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역학으로서‘康津學’정립을 위해 마련됐다.

강진다산실학연구원은 그동안 강진에서 형성된 다산실학과 다산학단의 학문적 전통을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널리 알리는데 힘써 왔다.

2015년부터는 강진지역의 다양한 역사·문화적 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지역사회와 연계시키고자 한‘강진학’형성을 모색해 왔으며, 이번이 그 두 번째 시도이다.

먼저 박종기 교수(국민대)는“고려시대 강진지역의 군현변동과 도시 성격”을 통해 고려시대 해상교역의 중심지에서 조선시대 군사 도시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을 청자생산과 연계해 설명했다. 즉,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이후 고려시대 내내 청자를 중심으로 해상 물류의 거점도시로써 그 역할을 지켜왔으나, 그러한 사회경제적 중요성이 오히려 왜구의 집중적인 침탈을 받게 됐으며 이를 방어하기 위한 병영이 설치되면서 군사도시로 새롭게 변모됐다고 밝혔다.

이어 한정훈 교수(목포대)는“고려시대 강진지역 교통입지와 청자유통”주제로 강진청자의 운송 방식과 경로를 교통사적 시각에서 정리했다. 그 결과 공납용 강진청자는 장흥창 뿐만 아니라 미포부곡을 통해서 운반됐을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특히 대구소에 인접한 미포부곡의 力役을 이용한 청자 운송은 전북부안지역과 다른 강진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경철 소장(나라이름역사연구소)은“후고려 궁예와 고려 왕건의 계승관계와 강진불교계의 동향”에서 강진 무위사의‘선각대사 형미비’를 통해서 궁예와 왕건의 계승적 측면을 조명 했다. 조 소장은 이어 비문에 새겨진‘대왕’은 궁예를 지칭하며, 그랬을 때 고려 초기 궁예에 대한 평가가 결코 부정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종 불교계 또한 우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궁예의 고려를 왕건이 고려로 다시 계승했음을 강진 무위사의‘선각대사 형미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남원 교수(이화여대)는“강진요업의 도자사적 의의”을 통해 고려시대 전기간에 걸친 강진 청자의 발달과 쇠퇴과정과 강진 스타일의 청자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정리했다. 또한 원료의 조달과 운송의 편의상 요업의 중심지가 삼흥리→용운리→계율리→사당리→수동리 방향으로 이동, 근대기 강진 요장에 대한 발굴 및 조사로 인해 근대 도자사 연구의 출발점이 됐음을 강조했다.

이상의 발표에 대해 서금석(전남대), 양광식(문사고전연구소), 박진훈(명지대), 조은정(고려청자박물관) 학예사 등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발표 사회는 김선경(서울대 규장각) 교수가, 종합토론은 도현철(연세대) 교수가 진행했다. 특히 이번 토론에서는 강진지역의 역사·문화 등 전반에 대한 현지조사를 오랫동안 진행해온 양광식 문사고전연구소 소장이 그동안 광범위하게 축적해온 지역에 대한 정보 및 구전내용을 바탕으로 문헌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다산실학연구원이 강진에 자리한지 벌써 10년이 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강진지역의 역사·문화적 특성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지역학으로서‘康津學’을 정립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또한 고려시대 강진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문화적 위상을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학술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산실학연구원은 앞으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民·官·學 협동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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