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폐경을 맞은 선모(56세)씨는 이번 설 명절 때 남편과 크게 말다툼이 있은 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는 ‘화병’ 증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화병’ 증상은 이 맘 때면 주부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성 심장질환도 ‘화병’ 증상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주의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지정 심장전문 세종병원 심장내과 김경희 과장은 “여성 심장질환자는 남성과 다르게 가슴통증 등 전형적인 심장질환 증상이 아닌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듯한 비전형적인 증상으로 나타나 단순한 ‘화병’으로 오인하기 쉽다”며 “여성의 경우 폐경이 지나며 남성보다 심장질환 발생률이 높지만 비특이적 증상으로 나타나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장질환은 대부분 남성들의 전유물로 많이 알려졌다. 심장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는 남성들이 주로 즐기는 음주, 흡연 등으로, 20~30대 심장환자 중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절대적으로 많게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45세에서 54세 사이에 남성과 여성의 심장질환 발생률이 비슷해 지다가 55세를 넘어서는 역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김경희 과장은 “폐경기 후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급격히 줄면서 심장질환을 억제하는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줄고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급격히 늘어나 혈관 내 콜레스테롤이 쌓이고 따라서 폐경기 이후 여성 심장환자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에스트로겐이 줄면 혈관벽 자체도 두꺼워지고 심장의 근육세포가 노화돼 탄력성을 잃어 딱딱해지는데 이런 현상이 누적돼 60대 이상 여성에서 심장병이 크게 늘어난다. 더불어 폐경이 되면 골다공증 등 여러 이유로 운동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동맥경화증이 가속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더욱이 여성이 남성보다 심혈관이 좁은 것도 한 원인이다.
김경희 과장은 “여성의 심장 크기는 남성의 90% 정도이고 관상동맥의 지름도 여성이 2.5~3.0 mm로 남성(3.0~3.5mm)에 비해 약 0.5mm 좁다. 따라서 폐경 후 콜레스테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혈관 막히는 속도가 남성에 비해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성의 경우 심장질환의 위험성에 대해 워낙 많이 알려지다 보니 예방과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정도 형성됐지만 여성의 경우는 심장질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인지하지 못하고 아파도 ‘괜찮겠지’하고 참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증상도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남성은 가슴을 쥐어짜는 듯하고 묵직한 통증이 나타나는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는 반면에 여성은 가슴통증과 함께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는 소화불량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심하게 숨이 차는 듯한 증상과 가슴이 가득 찬듯한 팽만감 혹은 가슴의 답답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슴이나 배에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팔이 아픈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심장질환을 다른 질병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증상을 ‘화병’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는 ‘화병’을 ‘hwa-byung’이라는 우리말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인 분노증후군’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화병은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세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억울함을 참고 지내온 중년 여성들 즉 40ㆍ50대 전후의 성인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과도 동반될 수 있는 복합적 질환 증후군이다. 그러나 심장질환 증상을 화병으로 오인할 수 있어 이로 인해 치료가 늦어질 수 있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심하게 차는 듯한 증상, 속이 매스껍거나 울렁거리는 소화불량의 증상이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경희 과장은 “현재 남성과 여성의 심장병 증상이 다른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의 호르몬체계와 자율신경체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수준이지만 폐경기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질환 위험도가 높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며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심장질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콜레스테롤 검사 등 기본적인 심장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궁경부암 검사나, 유방암 검사는 여성 대부분 정기적으로 받는 반면에 콜레스테롤 검사 등 심장검사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검사는 여성 87%가 1~3년에 한번 꼴로 유방암 검사는 50세 이상 여성 80%가 1~2년에 한번 꼴로 받는 반면에 25% 여성, 즉 4명중 1명은 한번도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여성은 콜레스테롤 검사 등 심장 기본검사를 더 적게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정기적인 콜레스테롤 검사 등 기본적인 심장검사를 통해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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