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원인 A씨(31)는 저녁 부서회의 때 뜻하지 않은 문자를 받고 적잖게 놀랐다. 한 대리운전 업체가 고가의 정수기를 경품으로 내건 스팸 광고를 접했기 때문이다. A씨는 솔깃했다. ‘4번만 이용하고도 무려 79만원짜리 정수기를 공짜로 받는다’는 기대감에서였다. A씨는 자칫 스팸 문자로 잊혀질 뻔 했던 번호를 꼭꼭 저장해두기로 했다.
모처럼 술자리를 마다하고 일찍 귀가한 직장인 B씨(36)도 뜻밖의 전화를 받긴 마찬가지다. 한 대리운전 기사로부터 “혹시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았냐”는 연락을 받은 것. B씨는 “대리운전을 부른 적도 없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응대했지만 대리운전 업계가 고객확보에 진땀을 뺀다는 얘기에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회식이 잦은 연말이 되면서 대리운전 업체간 출혈경쟁이 도드라지고 있다. 가격 파괴나 노래 부르기 등 서비스 차별화는 기본이다. 급기야 ‘순금전자파차단기’와 ‘정수기’까지 경품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5회 이용시 1회 무료’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업체 대표 C모씨는 “2번 이용하면 몇천원짜리 순금전자파차단기를, 4번 이용하면 79만 원짜리 ‘정수기 설치권’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미 상당수 단골고객이 정수기를 챙겼다는 말도 곁들였다.
‘고객 모시기’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스팸 문자도 들끓고 있다. 문제는 전단지나 펼침막을 보고 전화한 경우는 물론이고 114 번호안내를 이용한 경우에도 일부 고객의 휴대전화 번호가 고스란히 업자들 간에 거래되고 있는 현실.
대리운전 기사 D씨는 “고객의 번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단골도 확보하고 수입도 짭짤하다”고 실토했다. D씨는 저녁 즈음 선수 치듯 전화하면 옛 고객으로부터 ‘술자리가 끝나는 대로 부르겠다’는 약속을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고객의 전화번호는 일종의 보증수표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종 업계에서조차 경품 광고를 보내는 경쟁업체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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