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날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란 제목의 대국민 서신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들의 꿈의 크기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라며 “앞으로 국회의 논의와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 수도권과 지방이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 원칙을 가지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지난 77년 대전지방법원에 초임판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대전은 행정수도 바람으로 들떠 있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해약소송이 물밀 듯 밀려들어 계약해제에 관한 법리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고 술회한 후, “이어 78년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했고, 당시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울 집중의 폐해에 관해서 훨씬 이전부터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으므로 그저 좋은 일로만 생각했으며, 여론도 별로 반대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83년 우연히 공해문제연구소에 참여하게 됐으며, 공해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도시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노 대통령은 “정부가 72년 국토기본계획에서부터 대도시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으나 권력의 집중과 집중된 권력의 서울 집중으로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집중과 과밀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나아가 대도시 집중은 단순히 공해와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병, 마약, 청소년 범죄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뿌리째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어 “도시가 클수록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덩치만 크다고 일류도시가 아니다.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다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면서 “최근 세계 유수의 컨설팅업체가 조사한 살기 좋은 도시 순서에서도 서울은 세계 215개 도시 중 90위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연구소를 세운 이유=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93년에 지방자치연구소를 열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90년 3당 합당은 야당과 지역의 분열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면서 “권력의 편중과 소외가 지역으로 갈려서 장기화됨으로써 이른바 정치의 지역대결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자. 다행히 91년부터 지방자치가 시작되었으니 지방자치를 통해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면 지역대결도 좀 누그러질 것이다. 더욱이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 내가 지방자치연구소를 세운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는 것.
노 대통령은 “국세를 지방으로 넘겨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어느 세금을 넘겨주어도 걷히는 세금의 절반 이상은 서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지금도 세금을 지방으로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정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국가가 거두어서 지방으로 나누어 주기 전에는 세금도 지역 편중을 벗어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하자면 수도권에서 거둔 세금을 다른 지방으로 더 많이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결론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몇 년 전 서울의 각 구청에서 재산세를 걷으니 강남은 세금이 넘치고 강북 여러 구는 돈이 없어 구청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세금을 서울시가 걷어서 나누어 주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강남사람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같은 서울시 안에서도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전국 단위에서야 오죽하겠느냐”고 덧붙였다.
따라서 자치와 분권, 재원배분, 균형발전으로 지방을 살려야 한다는 게 노대통령의 견해다.
◇수도권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선택=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은 국회의 입법권에 달려 있다”고 ‘국회역할’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데 여기에도 걱정이 있다”면서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서울만 아는 서울 유권자와 서울 출신 국회의원이 지배하는 국회가 생산하는 지방정책, 지방자치정책 아래서 지방의 삶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결국 지방자치연구소를 운영하는 동안 동서갈등을 해소하고, 또 장차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과 대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발전, 지방분권, 재원배분, 균형발전, 이런 정책을 통해서 지방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됐다”면서 “그래서 강력한 분권주의자, 균형발전주의자가 됐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결정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생각하게 된 것은 대통령 후보가 되고난 후의 일”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2002년 3월 대통령 후보가 되고 곧이어 6월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이 선거에서 진 념 전 부총리가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됐고 노 대통령은 당시 진 념 후보를 지원했다.
당시 수도권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수도권 규제 문제였다. 이미 선거가 다가오기 전부터 ‘수도권 규제 때문에 투자를 하려던 외국기업이 다른 나라로 간다. 한국기업도 확장을 하려면 수도권을 떠나야 하는데 지방으로 가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가니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든다. 수도권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반대해 연일 강경한 성명과 시위를 쏟아내고 있었다는 것.
그런 한편 용인 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난개발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어서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지 않고는 규제의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 돼있었다. 물론 수도권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나는 진 념 후보에게 수도권 규제해제 대신에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 개념을 제시했다. 그리고 당 정책실에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주문했다”며 “행정수도 충청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지방을 발전시키고, 수도권은 계획적 관리를 통하여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는 행정 각부 지방분산 이전 주장이 여러 곳에서 나와 있던 터라 행정수도 이전도 그리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고, 행정수도 이전을 포함한 과감한 분권·분산 정책과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개념을 통한 규제개선은 수도권과 지방의 정치적 빅딜로,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보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은 이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행정 각부를 전국 각지로 분산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나는 행정 각부 분산은 국정의 원활한 통합, 조정에 지장이 생긴다는 주장을 했다”면서 “결국 지금 와서 보면 한나라당의 반대로 정부 기능의 일부가 찢어지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양쪽의 주장이 다 받아들여진 셈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금 평가해 보니, 나는 강력한 분권주의자, 분산주의자이기는 하나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분권전략이라기보다는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더 강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비전에 따른 수도권 규제개혁= 또 노 대통령은 서신에서 새로운 비전에 따른 수도권 규제개혁을 발포했다.
노 대통령은 “수도권이 사람답게 사는 도시가 되게 하려면 더 이상의 인구증가는 막아야 한다. 그것이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수도권 규제의 이유”라고 전제한 후 “그러나 그동안의 수도권 규제정책은 수도권의 집중과 기형적 비대를 막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수도권의 성장을 왜곡시켜 왔으며, 이제는 경쟁력의 논리와 난개발에 밀려 더 이상 유지하기도 어려운 정책이 되어 버렸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풀어야 하지만 함부로 풀려고 하다가는 지방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결단날 것 같은 싸움만 벌어지고 결국 규제를 풀기도 어려울 것”이라면서 “설령 규제를 푼다고 해도 싸움의 와중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규제만 덜컥 풀어버리면, 수도권은 그날로 난개발에 밀려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행정수도와 균형발전, 새로운 비전과 계획에 따른 수도권 규제개혁, 이것이 후보시절 수도권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정책대안”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실제로 대통령이 된 이후 바로 파주 LCD단지 건설 허가를 내주었고 그해 연말 삼성전자의 기흥공장과 쌍용자동차의 평택공장 확장을 승인했다는 것.
노 대통령은 “정부는 현재 동북아 경제허브 도시, 국제적 비즈니스 도시로서의 수도권 관리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그것은 양적으로 더 비대해져 교통, 공해, 과외와 학교폭력, 끝없이 올라가는 집값에 시달리는 도시가 아니라 질적으로 더 쾌적하고 경쟁력 있는 첨단 지식서비스 도시를 지향하는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투표 논란과 관련,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2003년에는 다른 사안으로 국민투표 문제가 큰 시비거리가 되어 있어 이야기를 꺼낼 형편이 아니었다. 연말에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이 통과됐으니 ‘국민투표를 붙이자’ 할 일도 없어져 버렸다. 정부로서는 수십 번의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었으나 여야간 큰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토론과 설득이 부족한 결과로 비춰지게 됐다”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명분으로 반대하는 분들에게는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수도권 규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행정수도 이전도 안하고, 공공기관 이전도 안하고 수도권 규제만 덜렁 풀자는 것인가? 그것이 타당한 일인가?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아니라면 수도권 규제는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그러면 수도권의 미래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서신 말미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들의 꿈의 크기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국가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선거에서 표를 모을 일이 없다면 그 역시 이만한 꿈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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