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은 수교협상 당시 일본측이 제공하게 될 유·무상 차관의 명목을 둘러싸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17일 공개된 당시 문서에서 확인됐다.
정부는 특히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 자격으로 북한지역의 보상금도 챙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협상전 명분 싸움에서부터 한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패전처리를 논의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서명국의 일원으로 참가하려던 외교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첫번째 좌절을 맛봤다.
이어 보상문제를 `청구권’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이마저 경제협력 및 독립축하자금으로 의미를 내리 깎으려는 일본의 의도에 휘말렸다.
64년 3월11일자 외교부장관 명의 훈령은 한·일 위원회의 명칭을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가 아닌, `청구권 위원회’로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할 뿐 아니라 38선 이남에 국한돼야 하기 때문에 금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일본측의 설득이 주효했다.
일본측은 지원금액을 올릴테니 유·무상의 경제협력 형식을 취하자고 제의했다.
대신 우리측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순변제와 배상을 구분하지 말고 총액만 표시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 실리를 취했다. 위원회 명칭은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로 변했다. 또 `전쟁배상금’에서 `청구권’으로 의미가 줄어든 일본의 지원금은 `경제협력자금’이라는 엉뚱한 명목으로 변질됐다.
양측은 협정서명을 불과 한달여 앞둔 1965년 5월14일 회의에서까지 논란을 벌였다. 일본측 회담대표 니시야마는 한·일 경제협력이 동남아 제국에 대한 전쟁배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배상이 아니라 순수 경제협력”이라고 못을 박았다.
한국측 김봉은 대표는 “청구권과 경제협력을 별도 고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청구권 이라는 표현이 달라지면 중대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 자격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정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헌법상 이북지역까지 주권이 미친다는 점을 들어 북한 몫의 청구권도 받아내려고 시도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4조a항 중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에 이북지역도 포함된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일본은 북한지역도 보상대상 지역이지만 현재 교섭의 상대자가 될 `당국’이 없어 교섭을 못할 뿐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은 결국 `본 협정에 의한 청구권의 해결이 이북지역의 청구권까지 포함하는 가의 여부에 관해서는 협정문에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고, 양국 정부가 각각 적절한 설명으로 자국민을 납득시킨다(64년 3월11일자 외교부장관 훈령)’는 선에서 타협했다.
/염대흥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로컬거버넌스] 서울 노원구, 생애 전주기 마음건강 인프라 구축](https://simincdn.iwinv.biz/news/data/20260505/p1160273910776030_471_h2.jpg)
![[로컬거버넌스] 제12회 용인시-시민일보배 댄스스포츠대회 성료](https://simincdn.iwinv.biz/news/data/20260429/p1160278015397483_271_h2.jpg)
![[로컬거버넌스] 서울 구로구, 공원·하천등 생활환경 개선 사업 팔걷어](https://simincdn.iwinv.biz/news/data/20260427/p1160278633127462_722_h2.jpg)
![[로컬거버넌스] 경기 부천시, 생활 속 자원순환 실천 정책 확대](https://simincdn.iwinv.biz/news/data/20260426/p1160275002187300_228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