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총선을 한 달 앞두고 조성된 `탄핵정국’에 대한 대응기조를 놓고 정동영 의장의 민생파와 김근태 원내대표의 민주파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당시 민생파와 민주파간 논쟁은 내생적 변수인 `노풍(老風)’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부상에 따라 민주파의 논리를 앞세우는 것으로 최종 가닥이 잡혔지만, 이번 사안은 유권자의 표심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란 점에서 절충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천정배 원내대표가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며 `9월중 당론화’의지를 밝혔지만 그 또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당내 일각에선 김대중 정부 때 민주당에서 논의됐던 `민주질서수호법’으로의 대체입법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양측은 “적국의 침략에 대응하는 국보법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처벌하는 형법은 병존할 수 없다”(정덕구), “국보법 폐지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절충은 말도 안된다”(임종석)며 부정적 입장이다.
이에 따라 양측은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을 남겨두느냐를 핵심 쟁점으로 놓고 세대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을 떠받치는 이론적 근거는 민생과 민주다.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정덕구 의원은 30일 “국보법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민과 경제주체들에게 상당한 안정감을 준다”며 “해외에선 우리나라 안보를 불안하다고 보는데 폐지하게 되면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의원도 “국보법이 엉터리법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라며 “헌재의 합헌 결정에 반영된 국민정서와 경제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교한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이에 대해 폐지파인 이인영 의원은 “과거 경제가 좋을 때는 왜 없애지 못했느냐. 같은 취지에서 과거사 청산도 하지 말자는 뜻이냐”면서 “자가당착적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폐지입법추진위 간사인 임종석 의원은 “전쟁이 나도 기업은 돈을 번다. `민생부터’라는 한나라당의 공격포인트에 우리 스스로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며 “당지도부가 17대 개혁국회 운영의 원칙이 뭔지부터 분명히 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입장차가 큰 국보법 폐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과거사 청산과 언론개혁 등 각종 개혁입법과 맞물리면서 당내 노선차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임종석 의원 등 재야출신 그룹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것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경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혁규 의원 등 전문가출신 그룹은 “민생회복이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최근 의원총회에서는 정청래 의원이 신문사의 소유지분 제한 내용을 담은 언론관계법 시안을 읽어내려가는 사이 `경제통’으로 통하는 일부 의원들이 “이게 말이 돼”라며 코웃음을 치면서 문건에 X표를 그어대는 광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실질적 문제는 어떻게 입법을 포장하느냐, 국보법 폐지에 대해 느끼는 국민의 불안심리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다”며 “그러나 민생과 민주를 주장하는 그룹간의 이념적 간극이 워낙 커 당론이 아닌 국회 표결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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