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정치’ 與野 ‘용두사미’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7-22 19: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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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한동안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며 극한 대여투쟁을 자제해 왔으나 최근 강공전환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고 있어 여야간 ‘상생의 정치가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포문은 박근혜 대표가 열었다. 박 대표는 지난 21일 “정부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밤 삼성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며 이같이 말하고 “상생의 정치는 무조건 싸우지 않거나, 정부·여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정부가 안보에 있어 이해되지 않는 행태를 할 때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지금은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 흔들거려 야당이라도 버티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가 과연 경제를 살려낼 능력이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간첩이 군사령관을 취조하는 나라면 볼장 다 본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서해북방한계선(NLL) 사건도 문제의 핵심이 위장월경이지, 군대는 나라를 제대로 지켰다”며 “나라가 너무 이상하게 가고 있다. 우리가 이에 대해 공개질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과 빨치산을 민주화 인사로 판정했는 데 대통령이 여태껏 경고 한번 하지 않고 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밝혔다.

비록 ‘박근혜식’ 완곡어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평소 그의 절제된 어법과는 달리 전면전이란 강경한 `군사용어’를 썼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박 대표 발언 중 ‘국가정체성’ 대목은 현재 마련 중인 ‘당발전 3개년계획(5107 프로젝트)’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대적 사상전 대비’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 정권의 정체성을 문제 삼고 ‘정체성 논쟁’ 내지 `사상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배수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에 참석, “색깔론과는 다르다. 한국을 위해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논쟁을 벌일 때가 됐다”며 “우리는 수구보수가 아니라 개혁 중도보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는 박 대표의 ‘대여 전면전’ 발언이 단순 엄포용은 아니며, 이미 그 시기가 임박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이 오는 28∼30일 의원 연찬회를 열어 당의 입장을 정리하고 대여 노선을 가다듬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당직자들도 대여 강공 드라이브로의 노선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전여옥 대변인은 “무조건적인 상생을 하려면 (여권도)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며 “최근 (나라의) 기본원칙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안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집안에서 아버지가 술 마시고 사고치고 행패부리면 한동안은 가족들이 참겠지만 도를 넘어 집안의 존립근거를 해친다고 생각되면 더 이상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며 “마찬가지로 안보 등 나라의 기본과 관계되는 문제에서 잘못하면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박 대표가 이처럼 대여노선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가정체성 위기’뿐 아니라 당 안팎의 여러가지 상황변화도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여권이 최근 박 대표와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는 데 대한 반발 성격도 곁들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7.19 전당대회에서 ‘과도 대표’의 한계를 벗고 2년 임기의 ‘정식 대표’로 위상이 강화된 데 따른 자신감과 당내 비주류의 ‘야성(野性) 상실’ 비판에 대한 대응성격도 혼합돼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강력한 야당 지도자란 인식을 각인시킴으로써 여성 정치인이란 ‘핸디캡’과 ‘리더십 부족’ 비판을 극복하려는, 차기 대선프로그램의 일환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정부가 국가정체성을 흔들고 있다”며 정권에 대한 전면전 선포 여지를 밝힌데 대해 “국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며 거세게 반박했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을 계기로 간헐적으로 `박정희·박근혜 때리기’에 나섰던 우리당은 “아프리카 반군”, “남미 민족행방전선”, “군사독재 향수병”, “개떡같은 소리”란 격한 표현을 동원해 박 대표의 정체성이 `과거 회귀적’이라며 비판수위를 한껏 높였다.

우리당은 또한 박 대표의 강공전환이 한나라당내 비주류 등을 겨냥해 당내 결속을 다지고 자신의 리더십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여권에 포문을 맞추는 성동격서(聲東擊西)식 구시대 정치행태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했다.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2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어젯밤 `전면전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잠을 못잤다”며 “과거 정당지도자가 전면전이란 용어를 쓴 적이 과연 있느냐, 박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안정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민 위원장은 “탈권위주의 시대에 약간의 일탈을 전체적인 문제로 여겨 공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당내에서 박 대표의 리더십 확보가 중요하다면 21세기 비전과 미래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지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김현미 대변인은 `어젯밤 박 대표가 한밤의 도발을 하셨다’는 제목의 구두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미래로 가자는 것인지, 과거로 가자는 것인지, 낡은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인지, 새정치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한나라당내 강경론자들의 강경노선을 수용해서 국면전환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색깔론을 들고 나온데 대해 개탄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박 대표는 구체성과 알맹이 없는 대표적 정치인”이라며 “제1 야당대표가 녹음기를 틀어놓는 것처럼 대안없는 비판과 대책없이 듣기 좋은 소리만 반복하니까 오죽하면 한나라당 내에서도 `콘텐츠가 없다’, `탤런트 정치’라고 한다”며 은근히 한나라당내 분란을 겨냥하기도했다.

정세균 의원은 “국민들은 굶어죽게 생겼는데 개떡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며 “우리는 민생·경제살리기에 매진할테니 한나라당은 과거처럼 색깔론만 제기하라”고 힐난했다.

최용규 의원은 “박 대표는 원수계급장 달고 청와대로 들어가 아버지처럼 되겠다는 이야기냐”며 “한나라당은 이회창 전 총재부터 항상 전면전을 펼쳤지만 항상 헛다리를 짚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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