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이던 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경기 안양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이후 한 때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결국은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으로 추락한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까지 지낸 그가 검찰의 체포영장 집행에 물리력으로 저항하는 모양새를 취해 비난이 고조돼 온 상황이어서 법원의 최종 판단 여부를 차치하고도 이미 정치적 재기는 어려운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후보에서 범죄 혐의자로 전락한 처지가 웅변하듯이 그의 정치역정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88년 정계입문 이후로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김 전 대통령의 총애 속에 광주청문회 스타(88년), 당 대변인(89년)을 거쳐 92년 안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첫 선택의 기로였던 90년 3당합당 때 이 의원은 YS를 따라 여권에 합류했다. 노동부장관(93년)을 거친 그는 95년에는 당내 조직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첫 민선 경기지사에 도전, 당내경선은 물론 본선에도 승리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여기에 97년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은 `깜짝놀랄 젊은 후보’를 언급, 이 의원은 하루 아침에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정치역정에는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했다.
대선경선에 출마한 그는 이회창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이 후보가 아들의 병역문제로 지지도가 하락하자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으나 3위에 그쳤다.
물론 당시 490만표를 획득해 유력 정치인의 위상을 확고히 굳히기도 했지만 경선 불복이란 낙인과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시각으로 영남권의 외면을 불러왔다.
미국 외유 뒤 98년 9월 국민회의에 합류하면서 정치를 재개한 이 의원은 대권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또다시 노풍(盧風)이 강타하며 패색이 짙자 경선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그의 정치인생은 초라하기까지 했다. 대선 직전인 12월1일 민주당 탈당에 이어 자민련 입당,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여부를 둘러싼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갈등, 자민련 착근실패와 당직자들과의 불협화음 등으로 나타난 그의 행보는 한 때의 유력한 대권후보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이 의원은 변화와 개혁의 바람 속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인 충남 논산·금산·계룡 선거구에서 당선되면서 자존심은 지켰다.
그러나 4선의원이 된 그에게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법자금 2억500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의원은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이 허위사실로 본인을 모함하는데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한들 실추된 명예는 어디서 보상받느냐”며 “차라리 암살을 당하면 동정이나 받지만, `돈을 받아 먹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고 눈물로 항변했다.
/최용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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