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7일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따른 논란과 관련, 정당대표들과 회동을 통한 `정치적 타결’ 입장을 밝힌 것은 무엇보다 야당측이 끝내 투표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일 경우 현실적으로 강행하기 어렵다는 판단때문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을 빌려 12월 투표를 제안했으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부정적이거나 반대하는 기류로 선회, 재신임 투표 전망에 대해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나온 터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권 관계자들도 상당수 국민투표에 대해 정치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헌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실익도 없다는 판단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표 찬반운동이 이뤄지는 동안의 정치적 혼란과 투표후 벌어질 법적 다툼 및 정치적 공방, 국정혼란을 감안하면 설혹 재신임되더라도 오히려 국정운영 환경을 더 악화시키고 국정 지지도도 더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면 현행법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법적으로 애매하기 때문에 정치권에 의견을 물은 것 아니냐”며 “정치권이 반대하면 투표 실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정당대표들과 만날 때 우선 투표실시와 이를 위한 정치권의 합의를 거듭 촉구하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제3의 대안을 찾을 가능성을 상당히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최도술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면 노 대통령이 국민앞에 관련내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한 뒤 정치권과의 의견교환에 기초해 재신임 투표를 갈음하는 정치적 해법 등 다른 과정을 통해 재신임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다”며 “이는 정치권이 반대해도 국민적 공감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태영 대변인은 “고민의 일단을 내비친 것이지 어느 방향을 시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야당대표들과 만나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일정과 방법대로 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는 뜻이라고 노 대통령이 말했다”고 일단 재신임 투표 설득 의지를 강조했다.
청와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정상회담 결과 등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노 대통령과 정당대표들간 회동을 추진하고 있어 우선 회동 성사여부가 향후 재신임 정국의 향방에 첫 고비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야당 ‘치명상 피하기’
‘정치 해법론’ 전망
조기 국정쇄신으로 타협 가능성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대한 야권의 반대와 관련, “정당대표들을 만나 정치적으로 타결짓겠다”고 밝힘으로써 재신임 정국이 정치적 해법 모색으로 급선회할지 주목된다.
19일 현재 노 대통령의 `정치적 타결’ 언급을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야권이 이미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위헌론을 내세워 유보 혹은 반대 입장을 밝혀온 만큼 다시 투표를 하자고 적극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재신임 정국의 정치적 수습책을 찾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야권의 재신임 투표 반대·유보와 탄핵, 하야 등의 공세엔 노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제안에 따른 정국 주도권 탈환을 위한 역공과 동시에 이미 정치적 해법에 대한 모색이 포함돼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국민투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비기기 전략”이라고 말했다. 딱 부러지게 `정치적 해법’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는 지난 17일 MBC라디오에 출연, “대통령 측근비리가 재신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냐”며 “여론상 재신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미 재신임받은 것인 만큼 청와대와 정당간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내에서도 강재섭, 김형오 의원 등은 재신임 투표에 반대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국정쇄신 등을 통한 수습을 주문해왔다.
통합신당은 당초 재신임 투표에 반대했다가 노 대통령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재신임 투표를 당론으로 정했으나, 정동영 의원은 이날 CBS에 출연, `야당의 반대’에 대한 질문에 “현실적으로 야당이 극한적인 저지투쟁을 할 경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도 문희상 비서실장은 지난 11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답변에서 “개인적으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문제 방식으로 모든 정치권이 논의해 해결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치적 해법론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노 대통령이나 야권 양자 가운데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고,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강행과 야권의 극한 저지투쟁이 충돌하는 경우 양측 모두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뿐 아니라 그 어느 경우든 국정이 주저앉아 버릴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 대안으로 문희상 비서실장이 예시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문제 해결 방식’이 우선 정치권에서 거론된다.
노 대통령의 정치고문인 통합신당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이 지난 16일 중간평가 논란 해결 때 청와대와 정치권 사이에 만들어졌던 합의문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이 단순히 위헌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신임 투표 대신 정치적 해법을 예시하는 데 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SBS 라디오에 출연, `정치권내 해법’에 대한 질문에 “야당의 주장과 태도로 봐 가능치 않을 것 같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정치권내 해법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야당의 태도때문임을 들어 여운을 남겼다.
특히 김 위원장이 “재신임 투표를 국정을 쇄신하고 정치의 부패구조를 근본적으로 청산,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말한 대목은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경우 청와대와 정치권이 국민의 이해속에 합의할 수 있는 수습 방향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정쇄신은 정치권이 노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노 대통령도 약속한 것이고, 부패구조 청산은 노 대통령이 정치권에 주문하고, 정치권도 최근 국민여론을 의식, 각종 정치개혁 입법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실성도 있다.
국정쇄신 문제의 경우 노 대통령이 이미 `재신임 후 국정쇄신’을 천명한 상황에서 통합신당 등 여권내에서 `조기 국정쇄신’을 촉구하고 나섰고, 노 대통령이 `정치적 타결’을 언급하면서 “(상황을) 조속히 정리하고 국정이 잘 갈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국정쇄신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정치권과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더라도 정치권의 부패구조혁파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와 장치를 정치권에 주문할 것으로 보여 정치권의 대응여하가 정치적 타결의 성패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월과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거·정당제도의 개혁과 함께 정치자금 문제에 관해 `고해성사와 조사 혹은 사면, 제도적 개혁’의 해법을 정치권에 제시하고 적극적인 호응을 주문했었다.
정치권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검찰의 대선자금과 총선자금 수사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치권이 재신임 정국의 정치적 수습에 합의하고 또 구체적인 수습안을 마련하기까지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국주도권 문제도 겹쳐 논란과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양측이 서로에 대해 품고 있는 의구심과 불신을 감안하면 재신임 정국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내년 총선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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