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 발언직후 DJ측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자 이 의원과 권 전 고문의 변호인인 이석형 변호사는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3월초 당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투명하고 합법적인 당 재정운영을 강조했던 사전 당부에 따라 3월 중순께 현대측 비자금 제의를 거절한 것”이라며 “와전된 것”이라고 서둘러 해명하긴 했다.
그러나 굳이 권 전 고문측이 검찰 진술 및 공개 의총 발언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게 정치권의 의문이다.
이와 관련, 구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훈평 의원이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면서 “좋은 얘기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던데 사실관계 차원도 있고, 세상이 어디 그러냐”고 말했다.
DJ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DJ는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취지와 달리 정치적 의혹만 부풀린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하는 것인데 아쉽게 됐다”면서 “권 전 고문은 총선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할 라인에 있지도 않았고, 대통령은 총선을 전후해 사저나 관저에서 권 고문을 만난 적도 일체 없다”고 현대 비자금 인지 사실을 재차 완강히 부인했다.
DJ측이나 권고문측이나 이 의원 발언은 `말실수’ 또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만큼 더 이상 확산되거나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DJ의 핵심 측근은 “권 전 고문이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 의원 발언과 관련해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권 전 고문측의 `와전 해명’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수십년동안의 야당생활로 정치가 몸에 배어있고, DJ에 대한 충성심이 유별난 권 전 고문측이 `실수로 DJ를 언급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노갑 민주당 전 고문이 검찰에서 “2000년 총선 당시 110억원 가량의 돈을 조성, 선거지원금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여권 총선 자금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권 전 고문이 현대측에 총선자금 지원을 먼저 요청해 최소한 100억원 이상을 전달했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을 확보하고 권 전 고문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검찰측의 추산대로라면 권 전 고문이 관리한 총선자금 규모는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권 전 고문측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고려해서 던진 전략적 실수가 아니겠느냐”면서 “일종의 성동격서 전략”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전직 대통령의 인지 여부를 슬쩍 화제로 끌어들이면서 호남 여론과 현 정부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다목적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권 전 고문측의 한 관계자는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전 정권 핵심인사의 비리사건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고 말해 반전카드를 모색중임을 은연중 시사하기도 했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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