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5년- 부문별 평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2-18 17: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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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정책’추구 남북관계 개선 1998년 2월25일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오는 24일로 임기 5년을 마감한다.

현정부의 공과는 임기가 끝난 뒤 총체적 분석을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해야할 역사적 과제이지만 그간의 국정운영 실적과 평가를 ▲경제 ▲남북관계·외교 ▲정치 ▲사회·문화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살펴본다.

◇경제분야 =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라는 국가위기를 떠안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무엇보다 97년말 39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을 지난해말 1214억달러(세계4위)로 늘림으로써 국가부도 위기를 해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부문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 97년 396.3%에 달했던 기업부채비율이 지난해엔 135.6%까지 낮아졌으며 재임 5년간 무역수지 흑자 누적액도 949억달러에 달했다.

특히 IT(정보기술) 산업의 GDP(국내총생산) 비중이 97년 7.7%에서 연평균 20%씩 성장, 2001년엔 15.6%까지 늘어나 `IT강국'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지난해말 초고속인터넷 가입이 1027만가구, 인구 100명당 17.2명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중 단연 1위인 것도 IT강국의 위상이 허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여기에 1만1125건에 달하는 규제중 절반이 넘는 6060건을 폐기하고 3166건을 개선해 대내외적으로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 임기 5년간 611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했다.

이와 함께 국토의 균형있는 개발체계 구축을 위해 `국토기본법' 등 관련법을 정비, `선계획-후개발' 원칙을 확립한데 이어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계획 확정 등 지역균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2001년말 391억달러에 달하던 단기외채가 2002년엔 477억달러(6월), 529억달러(12월)로 급증하는 등 외환시장의 완전한 건전화에는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재임 5년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됐던 각종 연금의 구조적인 수지불균형 현상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새정부로 넘기게 된 것도 향후 추이에 따라선 국민의 정부에 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관계-외교 = 국민의 정부 최대 성과 중 하나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었지만 `북한'이라는 화두는 김대중 대통령 퇴임때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5년간 남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화해협력 정책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집권 이후 대북 포용정책의 큰 틀을 마련한 국민의 정부는 `베를린 선언'을 거쳐 2000년 6월 평양에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된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남북은 이후 9차례 장관급 회담을 포함해 정치·경제 적십자 등 각 분야에서 80차례에 가까운 공식 회담을 가지며 분단 반세기의 벽 허물기에 나섰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98년 11월 시작된 것을 비롯해 끊어진 경의선 철도 연결이 목전에 다가왔고, 이달에는 비무장지대(DMZ)를 관통하는 동해선 임시도로가 개통돼 일반인들의 육로를 통한 DMZ 통과가 이뤄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또 개성공단 건설 추진,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아시아경기대회 북측 선수 및 응원단 참석 등 성과가 적지 않았고, 98년 고 정주영 회장의 두차례에 걸친 `소떼 방북'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남북 화해무드 고조에도 불구하고 98년 6월 속초 앞바다에서 발생된 북한 잠수정 발견 및 이어진 묵호 무장간첩 침투사건 등은 남북관계 경색요인이 됐고 99년 6월에는 남북간 무력충돌인 `서해교전' 사태까지 발생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지난해 6월 북한군의 도발로 자행된 제2차 서해교전은 `햇볕정책'의 지속적 추진여부를 둘러싼 심각한 국론분열 양상을 일으켰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같은 논란은 급기야 `대북송금' 파문으로 이어지며 김 대통령의 직접해명과 사과 사태를 불러왔지만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국민의 정부 이후까지 계속 논란거리로 남게 됐다.

◇정치분야 =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로 탄생한 국민의 정부는 소수여당의 한계속에서도 인권확립과 민주화의 진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인권법과 부패방지법 등 개혁입법을 통과시켜 인권신장과 부패차단의 제도적 개선 효과를 낳았고, 햇볕정책의 일관된 추진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시대적 흐름으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여야간 정쟁과 폭로, 대립과 반목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개혁은 겉돌기에 그친 가운데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실현시키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으며, 냉전시대 상징인 국가보안법 개정도 실현되지 못했다.

현 정부 5년간의 정치 혼란은 이념지향이 다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불안한 `동거'와 원내소수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고, 여권내 갈등과 인사 난맥상, 원내 다수인 한나라당의 강도높은 대여투쟁으로 증폭됐다.

2000년초 김 대통령은 민주당을 창당, 총선에 임했으나 야당에 원내1당 자리를 내줬고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의원꿔주기'라는 기이한 일도 벌였다.

`6.15 남북정상회담'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경사도 있었지만 잇단 게이트 사건 등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2000년 민주당내 정풍운동으로 권노갑 전최고위원이 사퇴한뒤 2001년 의약분업과 이용호게이트, 언론사 세무조사, 임동원 통일장관 해임건의안 표결과정에서의 `DJP공조' 붕괴 등으로 레임덕에 접어들었고, 2001년 11월엔 김 대통령이 정치적 모태인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했다.

16대 대선이 치러진 2002년 국민경선으로 노무현 당선자가 화려하게 등장하고 국민이 월드컵 4강 신화에 열광하는 사이 김 대통령은 두 아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개혁과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계승을 표방한 노 당선자가 대선에서 승리, 김 대통령이 추진했던 햇볕정책과 각부문의 개혁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은 국민의 정부가 위안으로 삼을만하다.

◇사회-문화 = `생산적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의료보험 통합 등 복지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일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전국민적 복지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을만한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대회 및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 과정에서 `길거리 응원단' 형성 등 전국민적 공동체 의식을 발현시켜 국민통합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독재적 관행이었던 각종 출판물과 언론보도에 대한 사전검열제도를 혁파한 것도 민주국가 건설의 측면에선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출범 초기 IMF 환란 극복과 함께 최대현안이었던 실업문제와 관련, 정부 집계로는 98년 6.8%(정부 공식집계)에 달했던 실업률이 지난해말 2.7%로 낮아진 것도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의약분업 정착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물론 보험재정의 불안정, 각종 연기금 운영을 둘러싼 우려 등 일정한 한계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수원 주변지역 난개발이라는 부작용을 낳는 등 대의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실리를 추구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여성인력의 과감한 기용과 여성부 신설 등 전향적 정책을 추진, 성차별 시비를 상당부분 해소했지만 국민적 관심사인 교육문제에 있어선 사교육비 증가와 공교육 부실화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학력저하의 시비를 낳기도 했다.
/이영란-서정익-박영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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