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 “평화를 위해서나 미래를 위해서, 또 현실적으로 반국가단체와 접촉하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모든 것을 전부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에 투자해서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말했다고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또 “이런 의미에서 이번 일이 불거졌을 때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나, 남한의 기업이 이미 확보한 권리를 위해서나 현실적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상대하는 초법적인 범위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 우리의 법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현대상선 대북송금 문제의 전모를 특검제나 국회의 국정조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국익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전모공개 불가'발언을 두고 노무현 당선자측은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에 미묘한 시각차가 나타나고 있다.
◆盧당선자측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6일 대북송금 파문과 관련, “이 문제로 우리 사회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면서 “국회도 청와대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협조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인수위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밝힐 것은 밝히되 조속하고 원만하게 매듭되기를 바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낙연 대변인이 전했다.
노 당선자는 특히 “국회가 적절한 수준의 결정을 내려 빨리 매듭지어 줬으면 한다"면서 “국회가 결단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매듭되지 않은 채 소모적 논쟁만 끝없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노 당선자는 `진상은 밝혀져야 하지만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해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 범위 등을 국회가 판단했으면 한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국회의 판단을 요청한 것은 국회가 결단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종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고 `국회 떠넘기기' 비판에 대해 해명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진상규명 범위에 대해 “그것을 국회가 결정해 줘야 한다"고 말하고 `청와대가 무엇을 양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사건의 조속한 매듭 취지에 맞게 협조해 줬으면 하는 기대를 말한 것으로, 청와대가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노 당선자 측근들은 “김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과 청와대가 현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진상규명 목소리가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특검이나 국정조사 없이 이 선에서 끝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대통령의 사람들이 국회에서 비공개로 밝힐 것은 밝힌 뒤 대통령은 (여야 합의 이후) 나중에 대미를 장식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그게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
한나라당은 지난 5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송금 `전모공개 불가' 표명에 대해 6일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며 특검제의 조속한 도입을 거듭 촉구했다.
박희태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 동의없이 집권자 마음대로 북한에 거액을 보내도 괜찮고 앞으로도 대북 밀실거래를 계속하겠다는 얘기냐"면서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은 진실고백과 대국민 사과밖에 없다"면서 “얼마든지 국민의 동의를 얻어 대북지원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경위가 뭔지 대통령은 솔직히 털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지은 죄가 엄청나게 크니까 다 털어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통치행위 운운하다 여론에 밀리니 국익을 들고 나왔으나, 이를 이해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택 총무도 “전모를 밝히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특검을 통해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인데 대통령이 미리 쐐기를 박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의 동의절차를 무시한 뒷거래 행위를 통치행위라고 규정하고 국익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협박으로 용납할 수 없다"며 “대북 뒷거래 사건은 전모를 밝히지 않는 게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것이므로 김 대통령은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혁파 의원 모임인 `국민속으로'의 김부겸 의원도 “전모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겠느냐"면서 “최소한 관련자들이 진상을 밝히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절차는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이렇게 된 이상 한나라당의 주장을 민주당과 신정부가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민주당은 지난 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대북송금 의혹의 전모를 공개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 대해 제각기다른 반응을 보였다.
6일 노무현 당선자의 측근 의원들은 즉각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구주류와 개혁파 일부 의원들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김 대통령이 나서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당선자의 측근 의원은 “대통령의 현실인식 문제가 심각하다"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문제는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으며, 대통령의 오늘 발언을 국민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럴 때 중요한 묘책은 바로 진실 뿐"이라며 “북한은 정상적인 경협대금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쪽에서 과정상 잘못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장선 의원은 “국민이 진상을 알기 원하고 야당이 특검법안을 제출한 상태이므로 도저히 덮으려고 해도 덮어질 사안이 아니다"며 “먼저 대통령이 당시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며, 국민과 야당이 납득못해 특검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그렇게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의원은 “국민에게 공개못할 것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것은 아니며 비공개로 밖에 할 수 없었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한 “공개 못할 것은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야당에 설명하는 2단계 해법이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훈평 의원은 “구체적인 전모를 밝히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나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러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등을 통해 직접 국민앞에 나서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필요하며, 국민도 납득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란·서정익·박영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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