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美용산기지에 김두한 수감' 문건 첫 발굴

홍덕표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0-11-03 16: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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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문화원, 1948년 자료 확인··· '용산기지 역사책' 내달 발간
▲ 1948년 3월15일자로 작성된 미군정재판 군사위원회 명령 2번 일부.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시민일보 = 홍덕표 기자]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미7사단 구금소 수감 사실을 확증하는 문건을 최초로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구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1948년 3월15일자로 작성된 '미군정재판 군사위원회 '명령 2번'(Military Commission Order #2, 단 해당 문서에는 작성년도를 1947년으로 잘못 표기함)과 같은해 3월26일자로 작성된 '명령 3번', 5월17일자로 작성된 '명령 5번'이다.

명령 2번에 따르면 김두한 등 일당 16명이 각각 교수형(김두한), 종신형(김영태·신영균·홍만길·조희창), 30년형(박기영·양동수·임일택·김두윤·이영근·이창성·송창환·고경주·김관철), 20년형(문화태, 송기현)을 언도 받았으며, "전술한 형량이 모두 적절하게 집행될 것(foregoing sentences will be duly executed)"이라고 돼 있다.

이와 함께 "이들에 대한 영구적인 수감 장소가 지정되는 동안 한국 서울 제7사단 구금소가 구금 장소로서 지정되었다.(The 7th Infantry Division Stockade, Seoul, Korea, is designated as the place of confinement) 미군정청장이었던 하지 장군의 명령(COMMAND OF LIEUTELANT GENERAL HODGE)"에 의해서라고 기록돼 있다.

명령 3번은 김두한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관계자들이 미7사단구금소에서 각각 마포형무소, 대구형무소, 광주형무소, 부산형무소로 이감될 것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명령 5번은 "(김두한의) 형 집행은 미극동사령관 확인 전까지 보류될 것(the execution thereof will be withheld pending confirming action by the Commander-in-chief, Far East)"이며 "대전 형무소가 구금 장소로 결정돼 죄수(김두한)가 즉시 이송될 것(the prisoner will forthwith be transferred thereto)"이라고 기록됐다.

이후 김두한은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됐으며, 제3대 민의원 당선(1954년, 서울 종로을), 제6대 국회의원 당선(1965년, 용산구 보궐), 국회 오물투척 사건(1966년)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972년 55세 나이로 사망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김두한 관련 자료를 찾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알려졌던 김두한 수감 관련 사실을 주한미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대사의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 묻혀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구는 해방 후 미7사단의 용산기지 주둔, 김두한 수감 기록, 한국전쟁 시기 용산기지의 역할 등 새로운 사료가 포함된 용산기지 역사책 '(가칭)6.25전쟁과 용산기지'를 오는 12월에 발간한다.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2014)',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2017)'에 이은 용산기지 역사 3부작 마지막 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장현 구청장은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을 위해 근현대시기 저 땅에서 과연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며 "용산기지 관련 새로운 사료를 지속적으로 발굴, 시민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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