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영업 도움 제안받고 삼성 내용만 박씨에 전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7-27 19:12:3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자술서 옛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 유출

옛 안기부 특수도청팀 ‘미림팀’ 팀장이었던 공운영씨(58)가 지난 26일 오후 5시경 자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딸(29)을 통해 언론에 자신의 심경과 도청 테이프 유출 과정을 밝힌 자술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미스터리’는 여전히 남는다.

공씨가 ‘MBC X파일’ 보도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앙일보에) 초상났다고 좋아하지 마라.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한 인물이지만 그의 자술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씨는 자술서에서 도청문건의 보관·유출 경위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공씨는 “중앙정보부 요원 공채로 합격, 임용된 후 감찰실 등 여러 부서를 거쳐 과거 안기부 시절 대공정책실 정보관으로 근무하던 중 92년도 미림팀장으로 임명 받고서 상부의 지시인 미림업무를 과학화시키라는 지시에 따라 일부 인원을 본인이 직접 선발하여 훈련 교육 후 본격 도청업무를 시작한 바 있다”고 털어 놓았다.

이에 대해 공씨는 “과거에는 협조자를 통한 득문보고가 이뤄졌으나, 그것만으로는 사실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 파악을 위해서 취한 조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부언 설명을 했다.

공씨에 따르면 그 후 미림팀은 김영삼(YS) 대통령 당선과 함께 팀활동을 중지, 무보직 상태로 몇 개월 간 자신과 팀원이 모두 방치됐다.

이에 격분한 공씨는 당시 “성과를 인정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미림요원을 푸대접 할 수 있느냐, 이런 식이라면 누가 비밀업무를 수행하겠느냐”고 항의 했고, 결국 그는 팀장 직책에서 평직원 직책으로 내려앉았지만 가까스로 재 보직됐다.

그러던 중 94년(YS 집권시)도에 공씨는 상부로부터 다시 미림팀 재구성을 지시 받았고, 공씨는 “과거에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며 완강하게 불복했으나, 결국 설득당하고 팀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공씨는 “언젠가는 또다시 도태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를 대비, 중요내용은 은밀히 보관하기로 작심하고 일부 중요내용을 밀반출해 보관하던 중, 예상했던 대로 김대중(DJ) 정권으로 바뀌면서 자신은 직권면직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공씨는 “너도 나도 마치 자기들에게 똥물이라도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역겹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직에 대해 심한 배신감마저 갖게 만들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공씨는 퇴직 이후 퇴직금과 가옥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공씨는 삼성그룹핵심인사와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등과 돈독한 관계에 있는 재미교포 박모씨로부터 함께 직권면직된 전 동료 A씨를 통해 “마침 삼성측에 사업을 협조 받을 일이 있다”며, “보관 중인 문건 중 삼성과 관련이 있는 문건 몇 건만 잠시 활용했다가 돌려주겠다. 그러면 A씨의 복직에 도움이 될 것이고 당신은 또한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공씨는 “당시 고민하다가 삼성그룹 자체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안만을 제시할 경우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A, 박씨 등과 접촉, 박에게 전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씨와 삼성측의 협상은 결렬됐고, 공씨는 문제의 도청 테이프를 돌려받았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시점에 국정원 직원들이 공씨를 찾아와 “후배들의 입장을 고려해 보관하고 있는 문건들이 있으면 돌려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공씨는 보관중이던 테이프 200여개 및 문건을 반납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그 후 또 몇 개월이 지난시점에 다시 공씨를 찾아와 “삼성측과 모종의 사건이 있었느냐”며 추궁을 하게 된다.

재미교포 박씨가 삼성측을 협박하고 있어 삼성측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공씨는 박씨가 MBC 기자를 만나 문제의 도청 테이프를 전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공씨는 또 지난 94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지난 94년도 대선 당시 저 자신 공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소임을 다했으나 DJ가 당선되면 저 자신이 또다시 엄청난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은밀히 선을 대어 지원한 바 있다”며 “이는 분명 저 자신을 위해 했을 뿐 아니라 어떠한 의혹도 없다”고 밝혔다.

공씨는 끝으로 “이제부터라도 과거사에 대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사회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고 과거를 청산하는데 있어 다소나마 역할을 하고도 싶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죽음까지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염려했던 분들은 안도하시겠지만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참을 뿐”이라는 말로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한편 공씨는 이날 오후 6시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아파트 22층 자택에서 어린이용 간이 풀장에 물을 받아 놓은 뒤 복부를 흉기로 4차례 찌르는 등 자해소동을 벌였다.

27일 현재 공씨는 복부 봉합수술 결과 별다른 합병증 없이 일상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

박지원씨 왜 알고도 침묵했나

국정원 - 공씨간 뒷거래 없었나

제2의 ‘X-파일’ 존재여부 촉각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을 지휘했던 공운영씨가 도청 경위 및 유포 과정을 스스로 밝혔으나 ‘안기부 X파일’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공씨의 자술서에 등장하는 박씨가 ‘국민의 정부’ 실세였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해당 테이프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는 등 또 다른 파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26일 MBC 기자들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려다 제지당한 박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장관도 5년 전에 문건의 녹취록을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박지원씨 정도면 (공씨 등의) 복직에 어떤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해 공씨와 함께 녹취록을 들고 갔다”고 말했다. 또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중앙일보와 박지원씨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삼성 관련 테이프를 들고 간 배경을 설명했다.

박씨는 “박 전 장관은 문건을 받고서 감사의 뜻을 전했고 테이프도 보자고 했으나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장관은 “사업권을 주거나 복직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밝혀 박씨를 만난 사실과 문건 입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렇다면 박 전 장관은 무엇 때문에 엄청난 자료를 확보하고도 침묵을 지켰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거래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공씨의 비위사실에 대해 눈감은 국정원에 대한 의혹도 점차 커지고 있다.

1999년 공씨에게서 테이프를 전달받은 박씨는 삼성과 금전거래를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삼성측은 “박씨가 6억원을 요구했으나 거절했고 곧바로 국정원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후 국정원은 공씨를 찾아와 1998년 퇴직시 유출해간 자료의 반납을 요구했고, 공씨는 200여개 테이프와 문건을 자진 반납했다고 자술서에서 공개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명맥한 공씨에 대한 어떤 처벌도 없이 그냥 넘겨버렸다.

이 때문에 공씨가 또다른 ‘무엇’을 근거로 국정원과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공씨가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이나 정권과 관련된 약점을 잡고 흥정을 통해 빠져나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세간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역시 “제2의 ‘X파일’은 없느냐”하는 것이다.

공씨는 자술서에서 “모든 것을 낱낱이 폭로해서 사회가 제자리를 찾고 과거를 청산하는데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안고 주검까지 가겠다”고 말했지만,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도 살기 위해서 다 돌려주지는 않았다”고 도청 테이프의 보유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씨 자신의 얘기대로라면 국정원에 반납한 200여개 테이프와는 별도로 다른 불법도청 기록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 기록들도 이번에 공개된 ‘X파일’과 마찬가지로 정치권의 지축을 뒤흔드는 내용들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박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