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여권이 말하는 “지역구도를 깰 선거구제”란 중대선거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말 ‘정치개혁 입법과 관련한 서한’을 통해 선거구제 개편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 도입 ▲도·농 복합선거구제 검토 ▲소선구제 유지 땐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등 을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여권의 복안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하되, 여의치 않으면 ‘소선거구제+권역별(혹은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괜찮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나 문 의장이 연합정부 구성을 운운한 것도 이 같은 선거구제 개편을 실현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으로 풀이 된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예컨대 각 당이 영남 또는 호남권에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을 서열을 매겨 제출해 득표율 비례에 따라 그 권역의 국회의원을 나눠갖는 식이다.
또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같은 수로 나눠 비례대표는 정당득표율로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두 제도 모두 여야가 열세지역에서 일정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이 내세우는 ‘지역구도 타파’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단골 메뉴인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하한(夏閑) 정국’의 현안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현재 외견상으로는 한나라당 등 야3당 모두가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나라당= 우선 소선거구제 유지 입장인 한나라당은 선거비용 증가 우려와 정치신인의 진출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여권의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전체 지역구 의원(104명)의 60%(63명)가 영남에 편중된 한나라당은 여권이 ‘선거구제 카드’로 당내 분란을 획책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가 문희상 의장이 취임 100일 회견에서 ‘선거제도가 개편되면 총리지명권을 야당에 넘기겠다’고 밝힌 데 대해, 개편내용에 대한 언급 없이 “민생경제와는 거리가 먼 무분별한 권력구조 개편 얘기는 그만 두라”고 일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집권세력으로 머물 수 있는 유리한 정치구도가 선거구제 개편과 내각제인 만큼 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풀이했으며, 맹형규 정책위의장도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상황이 불리하면 항상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반전을 기도해왔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한나라당 서울시당 한 관계자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는 2등으로, 그리고 비영남지역에서는 1등 혹은 2~3등으로 다수의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이런 식으로 제1 전국당이 되는 순간 우리나라의 지역문제가 눈 녹듯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한나라당이 이런 제안을 순순히 받아 줄 만큼 바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한나라당은 호남에서의 의석확보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며 “결국 열린우리당만 좋게 만드는 꼴”이라고 거듭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연정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은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이라기보다는 사실은 한나라당이다.
선거제도 개편은 한나라당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 의장은 취임100일 기자회견에서 연정 대상에 대해 “일단은 제1야당을 염두에 둔 것임은 틀림없다”며 ‘한나라당’을 1차 연정대상으로 지목했다. 물론 곧 이어 “제1야당이 아니라도 가능하다”고 말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만이 참여한 ‘소연정’도 가능함을 시사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연막’에 불과하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연정에 합의하고 참여정부의 마지막 2년간 총리를 맡으면서 2007년 대선을 준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규택 최고위원은 “‘DJP연합’이 실패했던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정체성과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연정은 불가능하다”고 이 같은 관측을 일축했다.
◇민주당= 물론 민주당도 열린우리당의 연정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11일 국회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등 여권이 처음에는 국정파괴의 주범으로 ‘여소야대’를 거론하더니 이제는 ‘선거구제’를 탓하는 등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이 먼저 한나라당을 연정 파트너로 지적한 것에 대해 “야당에게 내각제 수준의 실권을 가진 총리를 주겠다고 하는데, 지난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의 노선과 이념, 정당정책과 공약을 보고 투표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만일 노 대통령의 말이 현실화 된다고 가정하면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은 민주당 정권을 탈취해서 자기 마음대로 한나라당에게 주겠다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실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로 개편될 경우, 굳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유 대변인이 “연정과 지역구도 해소, 선거제도는 별개의 사안이며, 선거제도는 내년 지방선거 후 국회에서 정파간 협상으로 논의할 문제”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노당= 민주노동당은 여권의 연정제안을 ‘정략적 사탕발림’이라고 일축했지만,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선호하고 있는 민노당으로서는 굳이 선거구제 개편마저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일단 민노당은 11일 여의도당사에서 김혜경 대표 주재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지금까지 밝혀온 `연정 불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이날부터 2박3일간 충남 금산의 한 자연휴양림에서 개최하는 의원단 워크숍에서도 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 등 당내 일각에선 당론인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연결고리로 느슨한 형태의 정책공조형 연정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당= 열린우리당은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한 후속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는 11일 오후 임채정 열린정책연구원장과 이인영 부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정 문제 등에 대한 온라인 좌담회를 가졌고,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도 12일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을 초청한 가운데 연정과 관련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전병헌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야당 대변인들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더라도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혁파하고, 본질적인 정치개혁에 동참하자’는 집권여당 지도부의 취임 100일 회견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물론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 감정 섞인 짧은 식견으로 대응하는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집권을 원하고 국민통합을 바라는 정당이라면 문 의장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내부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등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들은 박 대표의 총리직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가 총리직을 맡거나 한나라당과 연정이 이뤄질 경우,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불명확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장점도 동시에 무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장관의 한 측근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의 정책적 연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체성이 다른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면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연정 논의를 둘러싼 당내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바른정치연구회 소속 이종걸 의원은 “지역구도 해소는 우리당의 창당 목적”이라며 “처음에는 연정 논의의 시기와 방법에 의구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의원들 사이에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상황”이라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우원식 의원은 “지금은 양극화 문제 해소 등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에 총력을 기울여 나갈 때”라며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당 정체성”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영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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