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111년전 문서 첫 공개

고수현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17-07-13 14: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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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사한 가옥·묘지·전답 등 사료 담겨
상세 지도에 둔지미 한인마을 강제철거 등 시사


[시민일보=고수현 기자] 1906년 일본군이 용산기지 조성에 앞서 작성한 '용산군용지 수용관련 문건'이 111년만에 공개됐다.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이 본격화된 가운데 용산기지의 원형과 역사성을 밝히기 위한 작업에 착수, 그 일환으로 이번 문건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구가 공개한 문건은 61쪽 분량으로 일제가 용산 군용지를 수용하면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구체적인 숫자가 담겨 있다.

문건은 군용지 수용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와 이토 히로부미의 ‘통감부’, 일본 육군성 사이에서 오간 여러 대화를 담아내 이목을 끈다.

문건 말미에는 약 300만평에 이르는 용산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이 표시된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가 9쪽에 걸쳐 실려 있다.

명세도(상세 지도)에는 대촌, 단내촌, 정자동, 신촌 등 옛 둔지미 한인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마을 규모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명세도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에 따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구 관계자는 전했다.

명세도에는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도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년 동안 이용했던 역사와 흔적이 오롯이 배어 있는 길이다. 도성을 빠져나온 조선통신사도 이 길을 통과해 일본으로 향했다.

구는 이번 문건 발굴이 학계는 물론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컨대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은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서 충분히 복원이 가능하다.

아울러 구는 옛 둔지미 한인마을에 대한 기록을 통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용산기지 조성 이전, 지역의 오랜 역사를 부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건 발굴의 주인공은 용산문화원에서 지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천수씨(41)다. 김씨는 ‘아시아역사 자료센터’에서 수십만건의 문서를 조회한 끝에 지난 2014년 해당 문건을 찾아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가 공개 설정해둔 문서였다.

이후 김씨는 문건을 상세히 분석, 지난 6월 용산구청에서 열린 ‘용산공원 제1차 공론장’에서 주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최초로 공개했다.

구는 이번 문건 발굴을 계기로 용산공원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연구를 보다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구는 현재 ‘구술사 프로젝트’를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11월 중 ‘용산기지와 둔지미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가칭)’ 책자를 발행한다.

성장현 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용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역사를 감안, 공원 조성 과정에서 구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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