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금리·AI 감속 ‘트릴레마’, 복합위기 파고 넘을 골든타임 사수를

시민일보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6-09-17 14: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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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순항하던 한국 경제 앞바다에 거대한 삼각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 글로벌 고금리 장기화, 그리고 글로벌 빅테크(Big-tech)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속도 조절론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이른바 ‘트릴레마(Trilemma │ 3중 고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대외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 경제 구조상, 이 세 가지 악재는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방파제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가장 먼저 들이닥친 당면한 위협은 중동발(發) ‘오일쇼크(Oil shock │ 석유 파동)’가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Yemen) ‘후티(Houthi)’ 반군 간의 무력 충돌로 확전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망은 전례 없는 ‘3중 봉쇄’의 위기에 처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과 ‘홍해(Red Sea)’의 ‘바브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Strait)’이라는 핵심 해상 요충지가 사실상 통제된 데 이어, 이를 우회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동서 육상 송유관마저 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멈추었다. 그 충격으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가뿐히 넘어섰고, 물류 마비 장기화 시 150~20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체 원유 수입의 60% 이상을 중동에 의지하는 한국 경제로서는 수입 물가 상승 압력과 무역수지 악화라는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한데도 불구하고, 국내의 위기 대응 체계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유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최고가격제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결과는 참담하다.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를 절약해야 할 유인이 실종되면서 지난 7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약 886만 배럴로 역대 7월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민들은 ‘유가 불감증’에 빠졌고,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을 위해 정부가 떠안아야 할 재정 부담은 이미 6월 말 기준 5조 원대에 달해 재정마저 한계에 봉착했다. 싼 기름값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휘발유를 다(多) 소비하는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역진성 문제와 시장 왜곡 현상만 낳고 있다. 지금이라도 부작용을 양산하는 최고가격제를 단계적으로 철회하고, 고유가 타격이 큰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정공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유가발 물가 상승 압력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고금리 장기화’라는 또 하나의 악재를 부채질하고 있다. 세계 금융 시장의 기준점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장중 5%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플레이션 불안과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규모 채권 발행이 맞물린 결과다. 이러한 미국의 금리 급등은 우리 채권 시장에도 그대로 전이되어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4.5%를 웃도는 등 시장 금리의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차주들의 상환 부담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연체액이 1년 새 120%나 급등하는 등 한계 가구와 ‘빚투’ 기업들의 현금 흐름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채권 금리 발작이 실물 경제 침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채무 재조정과 가계부채 관리가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산업마저 ‘AI 속도 조절론’이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에 대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출 실적을 견인해 온 우리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끼고 있다. 반도체가 꺾이면 양호해 보이던 성장률과 거시 경제 지표들도 순식간에 하강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특정 산업 쏠림 현상의 한계를 직시하고, 필요하다면 3대 ‘메가 프로젝트(Mega Project)’ 등 국가적 어젠다(Agenda)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유연성(Flexibility)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눈앞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식 처방이나 선심성 돈 풀기가 아니다. 고유가, 고금리, AI 감속이라는 ‘3중 복합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유가 상황에 맞춰 비축유(備蓄油) 방출 등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에너지 절약 등 국민적 고통 분담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역대 정부를 거치며 훼손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재건하고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중장기적 과제도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한다. 위기는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충격의 크기는 국가가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제의 체력을 갉아먹는 환상에서 깨어나,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선제적 대응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할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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