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인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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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상수 지부장 |
전쟁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은 병사가 아니라 지휘관에게 있다. 총을 쏘는 것은 병사지만, 사람을 움직이고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는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책임과 제재를 부과한다. 책임 없는 권한도, 권한 없는 책임도 존재할 수 없다.
화재도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소방시설을 관리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화재가 발생하는 순간부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지휘의 문제가 된다. 누가 자위소방대를 소집하고, 누가 각 부서에 피난을 지시하며, 누가 초기대응체계를 통솔할 것인가. 그 역할은 단순히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조직을 지휘할 권한을 가진 책임자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일반 특정대상물조차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키는 방향 즉 감독적 직위자가 자격을 가지고 선임토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요구되는 마당에, 최근 대통령령 제36652호(2026. 9. 8. 전부개정)로 개정되어 2027년 7월 1일 시행을 앞둔 '공공기관의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규정(이하 “대통령령)'은 정반대로 공공기관만 책임자를 지우는 길을 선택했다. 국민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을 요구하는 공공기관이, 정작 자신의 안전만큼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휘체계를 선택한 셈이다.
1. 2009년 제도의 작동 원리는 ‘책임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2009년 대통령령은 현장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 실제 소방시설 점검과 설비 관리는 기능직 직원이나 시설관리부서 또는 용역업체가 수행한다. 그러나 소방계획서 수립, 자위소방대 편성, 교육훈련 실시, 초기대응체계 구축은 조직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감독적 직위가 아니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당시 제도는 수많은 진통 끝에 감독적 직위의 관리자를 방화관리자(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하고 공공기관 전용 강습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관리자 스스로 '내 책임하에 관리된다'는 경각심을 갖고, 자신이 다칠까 두려워서라도 실제 소방시설 유지관리 직원에게 정상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고 당부하게 만들었다. 좋든 싫든 감독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소집하니 다른 직원들도 훈련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동 원리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나마 공공기관의 소방안전문화를 지탱해 온 유일한 견인차였다. 기술은 실무자가 담당하되, 책임과 지휘는 관리자가 맡도록 한 것, 이것이 공공기관 소방안전관리제도의 핵심 작동 원리였다.
2. 전부개정된 새 규정, 책임보다 자격증을 선택하다
이번 대통령령 전부개정은 원칙적으로 화재예방법상의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소지자를 선임하도록 했다. 반면 소방안전관리 부서의 책임자나 감독적 직위자는 예외적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표면적으로는 전문성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조직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은 가장 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미 자격증을 가진 시설직·기능직 직원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지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리자는 교육과 실질적 책임영역에서 이탈하고, 실무자는 상응하는 권한 이양 없이 법적 부담만 전가 받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는 전문성 강화가 아닌 명백한 책임의 하향 전가일 뿐이다.
3. 사람을 움직일 수 없는 소방안전관리자는 종이 위의 책임자일 뿐이다
소방안전관리자의 본질적 업무는 단순히 소화기를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피난계획 수립과 관리, 소방계획서 수립 및 시행, 자위소방대 및 초기대응체계의 구성·운영 및 교육 실시, 소방교육 및 훈련 실시 등이다. 이 모든 업무의 공통점은 앞서 짚었듯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예를 들어 갓 임용된 9급 시설직 직원이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되었다고 하자. 기관은 안도할지 모른다. "전문가가 있으니 우리 청사는 안전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소방설비기사는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능력을 갖춘 전문기술인이 맞다. 일반 특정소방대상물에서 그 전문성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현실은 다르다. 자위소방대를 편성하고, 부서장을 소집하며,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기관 전체의 초기대응체계를 지휘하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을 움직일 권한의 영역이다.
9급 직원이 부기관장과 국장, 과장은 물론 실무자들에게 자위소방훈련 참석을 요구하고, 각 부서의 초기대응 임무를 배정하며, 교육·훈련 불참을 지적할 수 있을까. 자격은 있을지 몰라도 지휘권이 없다면, 그는 결국 종이 위의 소방안전관리자일 뿐이다. 대통령령 제9조에 따라 기관장의 감독 하에 수행한다지만, 대형 참사 발생 시 수사기관의 잣대는 냉혹하다. 행정벌(화재예방법상 벌칙) 공백 여부와 별개로, '선임된 소방안전관리자'라는 타이틀은 사고 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1차 수사 대상이라는 무거운 형사적 리스크로 돌변한다.
4. '일손과 책임 경감'이라는 명목의 환상, 그리고 실무자 독박의 완성
대통령령 제10조의 소방시설 유지관리 대행 허용 근거 자체는 종전과 개정안이 흡사하다. 현행에도 대행 활용은 널리 이뤄져 왔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선임 명의와 지휘 주체의 위치에 있다. 종전에는 감독적 직위자가 안전관리자 명의를 쥐고 대행을 활용했기에 관리·감독의 끈이 현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반면 개정안은 9급 실무자에게 자격증+선임 명의를 하향 전가한 원칙 위에서, 동일한 대행 구조를 얹는다. 관리층은 "법정 자격자도 선임시켰고 대행도 돌리고 있다"며 관리·감독의 실질적 무게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알리바이로 변질시킨다. 평화로울 때는 '대행으로 편하다'고 포장되지만, 참사가 터지면 지휘선에서 비켜선 관리자는 웃고, 페이퍼로 선임된 실무자만 벼랑 끝 형사책임의 전면에 홀로 내몰리는 구조가 된다.
5.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전부개정의 추진 과정이다. 규정 내용을 통째로 뒤바꾸는 전부개정이라는 중대 사안임에도, '재입법'이라는 명목 아래 예고 기간을 2026년 7월 3일부터 7월 24일까지 불과 20여 일로 단축해 진행했다. 당초 입법예고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핵심 내용들이 돌변해 반영되는 과정에서, 관련 소방 전문 단체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었는지조차 의문이다.
결국 민원과 책임 피하기에 급급한 일부 학교 행정실장이나 사무관 등 중간 공무원들의 편의적 요구만 일방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안전을 다뤄야 할 제도가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특정 집단의 민원 처리용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6. 민간은 책임을 강화하는데, 공공은 제재를 지웠다
법의 실효성은 단순 의무 부여에 그치지 않고, 엄정한 제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최소한의 형식적 기준만 준수하려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고려하면, 강제력 없는 의무 규정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일반 특정소방대상물은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하지 않으면 화재예방법상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선임신고나 법정 업무를 태만히 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소위 의무도 있고 벌칙도 있는 실행규정이다. 또한 관계인은 소방안전관리자의 소방시설의 보수요구를 수인할 의무를 부담하고, 소방안전관리자는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가진다.
반면 공공기관은 어떠한가. 과거에는 그나마 대통령령 규정에도 과태료 조항이 존재했으나, 화재예방법 체계로 전환(2022. 12. 1. 시행)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규정의 벌칙과 과태료 체계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기관장이나 감독적 직위자의 책임을 담보할 실질적 제재는 백지장처럼 비어 있는 반면, 현업 실무자에게 자격증만 요구하는 구조는 이번 대통령령 전부개정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민간에는 서슬 퍼런 벌금과 과태료가 살아있고, 공공에는 처벌 없는 안전 무법지대만 방치된 셈이다.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공공기관이 정작 자신에게는 이토록 느슨한 면책 특권을 허용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7. 지휘봉은 다시 지휘관에게 돌아가야 한다
공공기관은 단순한 건물 관리 주체가 아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공적 조직이다. 그렇다면 민간보다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현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작동 원리를 무너뜨린다면,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공공기관에서 대형 화재로 소중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때 가서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몰랐다, 규정대로 자격증 가진 직원을 선임했다"며 또다시 실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제도를 다시 돌리면 그만이라는 것인가.
자격증 소지자 선임 원칙이라는 형식적 기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감독적 직위의 책임자가 실질적으로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지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소방안전관리 의무 위반에 대한 법적 제재가 마련될 경우 기관장의 법적 책임이 명확해지고, 이에 따른 인사상 책임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으므로 일반 대상물에 준하는 제재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책임은 선언이 아니라 제재를 통해 완성된다. 글의 첫머리에서 전쟁의 지휘관을 소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에서 병사에게 지휘봉을 쥐여주는 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군대는 이미 지휘체계가 무너진 조직이다. 이번 대통령령 개정으로 공공기관에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책임지는 지휘관은 오히려 사라지게 만들었다. 공공기관 소방안전관리제도가 후퇴를 넘어 유명무실화되지 않도록, 참사가 터지기 전에, 더 이상 실무자에게 독박을 씌우는 무책임한 행정을 멈추고 지휘봉과 책임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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