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인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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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상수 지부장 |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적 벽돌책 '죄와 벌'을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자신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조차 스스로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점 때문이다.
선민(選民)의식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범죄를 나름의 논리로 정당화한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고, 자신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만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죄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내면에서 또 다른 '벌'을 시작한다.
160년 전의 소설이 오늘날 산업현장의 안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안전에서도 위험한 순간은 누군가가 대놓고 "사람을 다치게 하자"고 마음먹는 때가 아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순간이다.
"오작동일 것이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다", "생산을 멈추 수는 없다", "지금 고치지 않아도 큰일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하나의 예외였던 타협이 반복되면 관행이 된다. 관행은 매뉴얼이 되고, 매뉴얼은 조직의 상식으로 결국 조직문화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상식과 문화가 사람의 생명을 집어삼킨다.
지난 3월 대전 안전공업 화재는 그 타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참사였다.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경찰 수사 결과 공장 내 슬러지와 오일미스트 등 가연성 물질 관리 부실, 국소배기장치 점검·관리 미흡, 화재 수신기의 임의 차단, 불법 증축에 따른 방화구획 훼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대표 등 14명이 입건됐고 이 가운데 13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첫째, 위험은 이미 여러 번 경고했다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장 내부에 장기간 쌓인 슬러지는 불길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요인이 됐다. 분진과 증기 등을 배출하는 국소배기장치의 점검과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불법 증축된 직원 휴게공간은 방화구획이 훼손되고 방화문은 상시 개방된 상태였으며, 피난·경보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화염은 이 공간으로 빠르게 확산했고, 그곳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참사의 가장 섬뜩한 대목은 따로 있다. 경보기가 울렸는데, 사람들은 대피하지 않았다. 경보기를 먼저 껐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안전공업은 2017~2018년부터 '경보가 울리면 우선 끄고 현장을 확인하라'는 취지의 매뉴얼을 만들어 임직원에게 교육한 것으로 확인됐다. 잦은 오작동으로 조업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직원 진술도 나왔다. 실제 화재 당시 수신기 옆에는 '경보 차단 순서'를 적은 한 장짜리 코팅 매뉴얼까지 붙어 있었다.
오작동이 잦았다면 수신기를 정비하고 감지기 회로를 보수했어야 한다. 경보가 불편했다면 그 원인을 찾아 고쳤어야 한다. 그런데 이 회사는 경보를 고치는 대신 경보를 끄는 쪽을 택했다. 안전의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해결하지 않고, 소리 자체를 없애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2009년 이후 공장 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화재는 64회, 최근 5년 동안만 48회에 달했다. 화재 등으로 보안업체가 출동한 기록도 135차례에 이른다. 64번의 화재는 이미 충분한 경고였다.
그러나 경고가 반복될수록 경고의 가치가 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졌다. 처음에는 화재가 사고였다. 그다음에는 오작동이었다. 그다음에는 귀찮은 일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경보를 끄는 것이 하나의 업무가 됐다.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위험에 익숙해진 것이다.
둘째,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합리화에서 죄는 시작한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행동을 단순한 범죄로 받아들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것을 정당화할 논리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낸다.
"이번 한 번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 "생산을 멈추면 손실이 너무 크다", "경보가 너무 자주 울려서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위험은 위험이 아니라 불편함이 된다.
경보음은 화재의 신호가 아니라 생산을 방해하는 소리가 되고, 감지기 교체 비용은 생명을 지키는 비용이 아니라 관리비가 되고, 소방훈련은 실제 대피능력을 높이는 과정이 아니라 귀찮은 행사가 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노동력과 생산성 상실, 수익성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인식된다. 그렇게 안전은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결국 참사는 바로 그 작은 타협들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누적됐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안전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안전하지 않다"가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말이다. 이는 위험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외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공업을 바라보며 완전히 자유로운가. 아파트에서 밤늦게 경보가 울리면 "새벽에 방금 잠들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 "애가 자는데 깨면 책임질 거냐", "저번에도 그러더니 도대체 몇 번이냐"고 관리사무소를 윽박지른다. 그러던 사람들도 신뢰할 수 있는 화재감지기(사실상 고가의 감지기)나 수신기로 교체하려 치면 "관리비 오른다"며 반대한다.
어쩌면 그 모습은 안전공업에서 경보기를 끄던 손과 완전히 다른 손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을 방치한 경영진과 조직의 책임 무게를, 일반 입주민의 작은 무관심과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친다. 왜 사람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경보를 끄는가. 관리자는 비용을 아끼고, 노동자는 위험을 둔감히 여기며, 주민은 시끄러운 경보가 멈추기만을 바라는가. 위험을 없애는 데는 돈과 시간이 들지만, 경보를 끄는 데는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안전의 실패는 거대한 악의에서만 오지 않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사소한 타협에서 시작된다. 라스콜리니코프의 합리화가 독방에만 있는 것이 아닌 이유다. 우리 중 누구도 이 타협의 공범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물론 책임의 동일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작은 타협이 조직의 의사결정이 되고 수많은 생명을 위협할 때 그 책임은 훨씬 무거워진다.
넷째, 경보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울리는 것이 아니다
안전 현장에서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지지 않는다. 수백 번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뭔가 작은 이상이 있다. 반복되는 경고가 있다. 고쳐야 한다고 알면서도 귀찮아서 미뤄둔 조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호들을 하나씩 무시한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면 남 일처럼 말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대전 안전공업에도 전조현상이 있었다. 수십 차례의 화재와 반복되는 경보, 설비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조업에 지장이 없는 방향으로만 처리했다. 문제는 경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경고를 경고로 받아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안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경보가 울리는 순간이 아니라, 경보가 울려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순간이다. 경보에 익숙해지고 타협에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사고에 다가간다.
법과 제도는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정부와 관계기관도 관리·감독 시스템의 빈틈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지막 순간 경보를 듣고 대피할 것인지, 설비를 멈출 것인지, 아니면 생산 지장 때문에 끌 것인지는 사람이 결정한다.
그래서 '죄와 벌'을 다시 떠올린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마주한 것은 법의 처벌만이 아니라, 논리로 정당화하려 했던 행위에서 도망칠 수 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었다. 죄는 법정에서만 판결되지 않는다. 외면했던 결과가 앞에 나타날 때 비로소 무게를 안다.
대전 안전공업의 경보도 수십 번 울렸다. 그러나 원인을 고치는 대신 끄는 선택이 반복되었고, 14명의 죽음과 60명의 부상이 돌아왔다.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손쉽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도 일상에서 시끄러운 경보를 싫어하고 비용을 미루며 불편을 탓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시끄러운 경보가 울릴 때, 우리는 화재감지기를 고치려 했는가, 소리가 멈추기를 바랐는가. 인간은 자신이 만든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우리가 위험 앞에서 만드는 작은 합리화의 대가는 아무도 모른다. 경보는 괴롭히기 위해 울리는 것이 아니다. 외면한 위험을 대신 말해주는 외침이다. 다음 경보가 울릴 때만큼은 멈춰야 한다. 끄기 전에 원인을 살펴야 한다.
만약 오늘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금 울린 경보는 오작동이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연신 이어지는 사과 멘트 뒤로, 거실의 평화가 깨진 아파트 주민의 짜증 대신 이렇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면 어떨까.
"애가 깼지만 잘하셨습니다. 불편하더라도 절대 끄지 말고 앞으로도 확실히 울려주십시오. 저희를 안전하게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절 잘 쇠세요" 끄는 손을 탓하고 체제만을 원망하기 전에, 울리는 소리를 지켜주는 주민의 목소리. 어쩌면 대전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과제는, 경보기를 끄지 않는 용기를 마주했을 때 그것을 타박하는 대신 응원과 감사의 온기로 화답하는 일상의 연대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경보기를 끄는 손인가. 아니면 경보의 원인을 고치는 손인가. 어쩌면 그것이 '죄와 벌'이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죄는 거창한 악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작은 타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벌은, 우리가 꺼버린 경보가 더 이상 울리지 않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 타협에서 자유롭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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