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區서 수감생활 했던 연합군 전쟁포로 명부 발굴

홍덕표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21-03-22 15: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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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문화원 김천수 실장, 영국군등 158명 문건 발견
아·태전쟁 시기 청파동 일대에 설치된 수용소서 생활
▲ 경성연합군포로수용소 연합군 전쟁포로 명부. (사진제공=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

 

[시민일보 = 홍덕표 기자]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경성연합군포로수용소'(KEIJO CAMP)에 수감됐던 연합군 전쟁포로 수감 명부를 발굴했다고 22일 밝혔다.


구에 따르면 명부는 연번, 이름, 계급, 군번(ASN), 국적 순으로 정리가 됐으며, 총 4페이지 분량이다.

총 158명의 연합군 포로 중 미군은 장교 2명, 영국군은 141명(장교 91명, 준사관 2명, 사병 48명), 호주군은 모두 15명(장교 6명, 사병 9명) 이었다.

원출처는 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며,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전자사료관’에서 해당 문건을 찾아냈다.

경성연합군포로수용소(이하 수용소)는 아시아·태평양전쟁(1941~1945년) 시기 말레이 전투(1942년)에서 일본군 포로가 된 연합군 병력을 일부 수감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시설이다.

개설 일자는 1942년 9월25일, 위치는 용산 청엽정(靑葉町, 현 청파동) 3정목 100번지(현 신광여중고 부지)였다. 과거 이와무라(岩村) 제사공장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증개축했다.

주한미군사(HUSAFIK) 등 자료에 따르면 1000여명에 달하는 연합군 포로들이 싱가포르에서 출발, 9월22일 부산 도착, 9월25일 기차 편으로 일부는 영등포에서 분할돼 인천 포로수용소로 갔고 영국군 엘링톤 중령 이하 158명이 용산에 도착했다.

영국인 장교와 부사관, 호주인 장교와 부사관이 별도의 내무반(총 12개)으로 편성됐으며 수용소 총책임자는 일본군 노구치(野口讓) 대좌(현 대령계급)였다.

김 실장은 “2014년 발간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 책자에 포로수용소 설치 배경과 석방과정 등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며 “새롭게 발굴한 사료는 내달 발간되는 증보판 책자에 수록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철거 당시 벽돌 한 장이라도 남겨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삼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내판 하나도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수백명의 연합군 전쟁포로들이 이곳 경성 수용소에서 정말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며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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