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선 지난 23일 동아일보를 향해 ‘기자적 자존심을 갖고 글을 쓰십시오’라며 비난을 토해낸지 이틀만에 다시 이들 신문과의 전면전에 나선 셈이다.
청와대는 25일 홍보수석실 명의로 청와대 브리핑에 ‘묻지마 반대 소신도 논리도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일부 신문의 말 뒤집기를 돌아 본다’는 부제를 달고 신문의 사설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반론을 펼쳤다.
청와대는 글에서 “일부 보수 신문의 말 바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제기한 국가적 중대사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꿨다. 왜 소신을 버리고 말을 바꾸는지 이유는 대지 않는다”며 포문을 열었다.
청와대는 “만약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그 제안을 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실 뿐”이라면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참여정부 출범 후 4년내내 계속됐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 개헌 제안과 관련해 청와대는 조선·동아·중앙일보의 논조가 ‘20년만에 돌아오는 기회에서 왜 지금 개헌인가’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2005년 2월16일 ‘만약 개헌을 한다면 이번이 20년 만에 돌아오는 호기’라고 했으며, 동아일보는 그 시기를 ‘2006년 후반기와 2007년 초’라고 2004년 4월29일자를 통해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한 다음날인 2007년 1월10일 조선일보의 경우 ‘개헌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한다’고 했으며, 동아일보는 ‘왜 지금인가 의문’이라고 했다는 것.
중앙일보 역시 2005년 7월8일에는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다가, 역시 노 대통령의 제안 후 ‘지금 여건상 개헌이 쉽지 않다. 차기 정권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 청와대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지금하면 왜 안되는지, 차기 정권에서 개헌이 가능한지 등은 면밀하게 따져보지도 않았다”며 “그렇다고 이들이 차기 정권에서 개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고 못박았다.
전작권 환수 역시 청와대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며 “그것을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때 전시와 평시로 구분해 평시작전통제권만 이양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청와대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평시작전권 이양을 ‘제2의 창군’이라 한데 대해 “조선일보는 ‘자주방위의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고, 동아일보 역시 ‘전쟁중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그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비로소 전작권 이양에 한미가 합의했다”며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하루속히’ 전작권을 되찾으라던 언론들이 ‘강력한 전쟁 억지 체제가 사라졌다’고 맹비난했다”고 따졌다.
청와대는 “참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작통권 환수 논의가 한창이던 1994년 3월 ‘서울 불바다 선언’이 나오고 그해 6월 전작권까지 환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신문들이 세계 7위의 국방력을 갖게 된 지금 ‘안보공백’을 운운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국가균형발전과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조선·동아·중앙일보의 말바꾸기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청와대는 균형발전의 경우 “행정수도 구상은 박정희 대통령 때 처음 나왔다”며 “당시 신문들은 ‘박 대통령의 일대영단’ ‘영도자로서 심모원려’라는 수식어와 함께 ‘국력의 팽창과 발전의 상징’이라고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또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1991년 9월25일 ‘수도를 옮겨라’는 제목의 칼럼(최청림 칼럼)을 싣고 ‘그래야만 수도권의 인구분산 및 전국의 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언했다”며 “동아일보 역시 1990년 8월26일 사설에서 ‘서울은 이미 도시화의 한계를 넘었다. 서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수도권 집중’ ‘서울과밀’ ‘인구폭발’등은 묵은 과제이자 90년대 신문의 단골메뉴였다”며 “(그러나 참여정부 후) 이상한 것은 신문지면에서 ‘수도권과밀화’ ‘국토균형발전’ 문제가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는 특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보수 신문의 시각을 “‘부동산 대책 핵심은 보유세 강화’에서 ‘보유세 폭탄’이라고 논조가 바뀌었다”며 성토했다.
청와대는 2003년 10.29 대책, 2005년 8.31 대책, 2006년 11.15 대책에 이르기까지 보수 언론이 집요한 흔들기로 국민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어줬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보수 신문의) 주된 논리는 부동산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며 “‘세금폭탄’이라는 말을 동원 조세저항을 부추키는데 온 지면을 할애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보수 신문이 항상 이런 주문을 한 것은 아니다”며 “이들은 90년대만 해도 땅과 집을 ‘공공재’로 인식해 땅 투기 억제는 ‘절대 선’이라고 강변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동아일보는 1990년 4월14일 ‘부동산보다 재산세를 더 내게 될 때 확실히 투기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도 1993년 2월3일 ‘아파트값 자율화 안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부동산은 사적 시장기구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해 지금의 종부세 반대논리와는 딴판의 주장을 펼쳤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들 신문들을 향해 청와대는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부동산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달라질 수는 없다”며 “보유세를 강화하라던 보수 신문이 ‘보유세 폭탄’이라는 말로 국민을 속여선 안된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청와대는 이어 “참여정부는 끊임없는 언론의 흔들기 속에서도 부동산투기억제·부동산거래 투명화·조세형평성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일관성을 유지해왔다”고 자신했다.
끝으로 청와대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는 어려워도 뒤집기는 쉬운 일”이라면서 “손바닥 뒤집듯 말바꾸고 원칙을 뒤집고 소신을 꺽어버리는 일은 ‘장삼이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특히 “오로지 대통령이 싫어 그런다면 국가와 국민앞에 너무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면서 “일부 신문들이 맹목적 ‘반노무현주의’에 빠져 부박하게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반박은 노 대통령의 ‘할일은 하고 할말은 하겠다’는 선언의 연장선상으로, 개헌 발의를 목전에 둔 현 상황의 분위기 반전과 함께 참여정부 말까지 청와대가 느끼기에 부당한 비판이라면 이에 대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해석된다.
/김영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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