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최근 열린 하반기 투·융자심사위원회에서 이승훈 역사기념관 조성사업의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시는 우선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사업 부지의 개발행위 허가 등 행정절차를 거친 뒤 투자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1년 전 열린 지난해 하반기 심사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예산 마련이 보류된 바 있어 사업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비 24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 상황에서도 인천시와 남동구는 '민간보조사업'이라는 이유로 기념관 건립을 위한 방안 마련에 손을 놓고 있어 지역 역사·문화 개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면하는 남동구, 뒷짐 진 인천시= 민간보조 사업으로 천주교 인천교구가 주도해 추진하는 '이승훈 역사기념관 조성사업'은 2017년까지 묘역과 그 주변에 역사기념관·공원·주차장·순례길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인천교구는 이를 장기 사업으로 추진해 '기념관-답동성당-제물진두(순교터) 성지-강화군 갑곶성지-진무영(강화성당)-황사영 생가 터-관청리 형방-현양동선'으로 이어지는 '인천~강화 순례 성지길'을 만들 계획이다.
사업비 96억원 중 인천교구가 절반인 48억원, 문광부가 나머지 절반인 24억원, 또 나머지 절반은 각각 인천시와 남동구가 12억원씩 부담한다. 4년 동안 단계적인 투자가 계획됐고 인천교구도 남동구 장수동 산132-1 이승훈 선생 묘와 기념관이 들어설 산132-3 부지 4만930㎡를 매입을 마쳤다.
반면 지난 1월 국비 확보 이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겠다던 시와 구는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 행정절차 해결을 위해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구는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예산 투입이 어렵다는 뜻을 최근 시와 인천교구에 전했다. 또 기념관이 들어설 부지는 개발제한구역법상 건축행위가 제한돼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며 부설주차장은 엄두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남동구 관계자는 "재정이 어려워 12억원의 투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개발제한구역이라도 소규모 문화재 관리용 건축물은 들어설수 있지만 기념관 같은 대규모 건축물과 주차장은 절대 들어설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남동구의 의지 부족이 드러난다. 구 주장대로라면 이승훈 선생 기념관 사업은 개발제한구역 해제가 우선 과제다.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위해서는 국토해양부 승인이 필요하지만 인천교구가 지난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이후 이를 위한 내부 논의는 물론 예산 검토조차 없었다.
인천시도 뒷짐 지긴 마찬가지다. 시는 2012년 이승훈 선생 묘를 시 기념물 제63호로 지정하고 지난해 말 열린 '주민참여 예산정책 토론회'에서도 전통문화시설 확충과 문화재 보존 강화를 위해 기념관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투·융자심사에서 국비 승인 등을 이유로 예산 투입을 보류했던 시는 투입이 결정된 이후 열린 심사에서도 행정절차를 문제 삼아 '조건부 승인'을 결정한 것이다.
시는 더욱이 당초 입장을 바꿔 묘비만 남은 곳을 성지로 볼 수 있는지, 이런 곳 굳이 예산을 들여 기념관을 세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승훈 선생은 당초 장수동 반주골에 묻혔지만 현재 천주교 발상지인 광주시 퇴촌면의 천진암 성지로 유골이 모셔졌다.
상황이 이렇자 국비를 따낸 국회의원이 더 조급해졌다. 내년까지 사업이 추진되지 않을 경우 국비 확보는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윤관석 국회의원(새정치, 인천시 남동구을)은 "이승훈 선생 기념관은 지역 문화, 역사와 관련된 사업이다.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올해 안으로 사업이 추진돼야만 국비가 투입된다. 인천시와 남동구가 주민을 위한 판단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념관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천주교 인천교구는 지난 2011년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이승훈 선생 기념관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1979년 서울대교구에서 인천교구로 소유권이 넘어온 이승훈 선생 묘는 30년 가까이 문화재 지정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1981년 유해가 수원교구 천진암으로 이장됐다는 이유 등으로 여러 차례 지정신청이 기각됐다.
이후 수원교구로부터 이승훈 선생 시복(諡福, 교황이 특정 지역 교회에서 그를 공경토록 선언) 확정 이후 유해 일부를 교황청과 인천교구에 분배하겠다는 답변을 얻은 뒤 2012년 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인천교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다. 천주교는 서학(西學)이 유입된 역사외 함께한다"며 "인천은 개항지다. 이승훈과 후손 순교자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훈 기념관을 모든 시민에게 개방해 지역에 잠들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기념관 사업은 순례길 사업의 시작이다. 반드시 추진할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정당성을 인정해 예산까지 반영했다. 바뀐 시장과 구청장 설득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베드로, 1756~1801)= 서학을 공부한 이승훈은 1783년 10월14일 아버지 이동욱을 따라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다. 당시 남인 학자들 사이에 천주교회가 싹틀 무렵이었다.
천주교 교리와 조선풍속 사이의 차이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이승훈 등은 40여일 동안 베이징에 머무르며 프랑스 신부들이 맡고 있던 북천주당을 찾아가 교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승훈은 1784년 2월 예수회의 드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조선 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는 뜻에서 베드루(Peter, 바위)라는 세례명을 받는다. 귀국한 이승훈은 포교활동을 하다가 신유박해로 1801년 3월22일 이가환·정약용·홍낙민등과 함께 체포, 4월8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다.
제사를 지내는 등의 문제로 배교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이승훈의 신앙은 후손들에게 이어져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증손 연구·균구가 1871년 각각 순교했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 영세자가 어떻게 인천 남동구 만수동 반주골 초곡산에 안장된 것일까. 당시 장수동과 만수동동에는 평창 이씨가 많이 살았고 초곡산이 평창 이씨 선산이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평창 이씨는 대대로 인천 만수동 일대에 살았다. 이승훈과 후손들의 시신은 자택으로 옮겨진 뒤 다시 선영이 있는 반주골로 옮겨 묻히게 됐다.
1973년 인천시 도시계획으로 이곳에 있는 선영의 묘는 당시 시흥군 군자면 군자리 낙화산골로 이장됐고 이승훈과 그의 아들 신규, 택규의 묘만 남게 됐다. 1981년 11월28일 이승훈 선생 묘가 개봉돼 유해 일부가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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