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발, 눈 좀 떠보시라요”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8-15 19: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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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만에 이산가족 화상상봉
남측 뇌졸증 노모 보고 오열


광복 60돌인 15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김매녀 할머니(98)가 휠체어에 의지한채 막내딸 황봉숙씨(69)와 상봉장으로 들어섰다.

57년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너무 컸던 것일까. 북쪽의 큰 딸 보매씨(78)와 작은 딸 학실씨(76)를 만난다는 사실에 전날 밤을 꼬박 새워버린 노모는 정작 상봉장에서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앞에 있다면 달려들어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흔들어 보련만. 화상 상봉인터라 북쪽의 딸들은 고개숙인 어머니의 모습을 화면 너머로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게 30여분이 훌쩍 지났다. “어머니! 보매 언니, 학실이 언니에요. 눈 좀 떠보세요.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휠체어 옆에 앉은 봉숙씨는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으로 김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가 언니들을 만나는 것은 마지막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기중이던 의료진도 애가 탔다.

김 할머니가 눈을 살짝 떴다. “보이세요, 어머니? 언니들이에요” 김 할머니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순간 남과 북의 딸들은 일제히 “어머니”를 외쳤다.

늙어버린 딸들의 얼굴을 잠깐 확인한 김 할머니는 이내 젊은 딸들을 만나러 꿈속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봉숙씨는 김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찍은 사진과 칠순잔치 사진을 내보이며 북쪽 언니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쪽의 언니들은 연방 눈물을 찍어냈다.

일제시대 때 중국에서 살던 김 할머니는 남편이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는 바람에 홀로 됐다. 그리고 해방 후 신의주로 귀국했다가 지난 1948년 큰아들·막내딸과 월남했다. 큰 딸과 둘째 딸은 그날 신의주역에서 헤어졌다.

안내원이 “한가족이 모두 가다가는 들킬 위험이 있다”며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터진 전쟁에서 생때같은 아들마저 빼앗긴 김 할머니는 막내딸과 살아왔다.

봉숙씨는 “어머니가 지난해 뇌졸중에 걸리셨지만 많이 회복되셔서 이제는 말짱하신데 어제 한잠도 못 주무시는 바람에…”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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