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 전 그날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 연평도에 사는 조모씨는 두려움속에 '그날 밤'을 보냈다. 집은 폭삭 무너졌고 '쿵 쿵' 터지는 포탄 소리는 머릿속에 각인됐다. 혼자 울다 지치면 딸 아이를 보며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스렸다. 조씨의 별명은 '악바리'다. 빠듯한 살림에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고생의 대가는 조그마한 집 한칸. 집을 마련한 그녀는 얼마전 집안의 집기를 모두 바꿨다. 하지만 북한군의 폭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당시 그녀는 말그대로 '패닉' 상태였다. 그녀는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다시는 떠올리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앞으로의 막막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끔찍한, 그리고 흉직했던 시간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현재 혼자 연평도에 남아 있는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다시 행복한 삶을 계획하고 싶다"고 했다. "연평도를 탈출해서 좋으냐구요? 남편 혼자 사지에 남겨두고 나오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애절한 탈출 소감을 밝힌 김모씨의 남편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연평도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사지에 내몰리던 그날, 남편은 "아이들을 생각해 먼저 뭍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김씨 역시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 말을 따랐다.
물론 마음 한 켠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간절함도 있었다. 인천항에 도착한 김씨는 그 때부터 불편한 심정을 감수해야만 했다. 뉴스를 볼때면 침이 마를 정도로 긴장이 됐다. 뉴스에서 나오는 '포' 소리만 들어도 가슴은 철렁였다. 괜히 나왔다 싶은 마음도 든다고 했다.
"아이들을 생각해 안전한 뭍으로 나왔지만 연평도 관련 뉴스를 볼 때면 항상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나와서 편하냐는 질문을 할 때가 가장 가슴이 저려요.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20일이 지난 지금, 김씨는 희망을 말했다. 북한군의 추가 도발을 우려하면서도, 조만간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김씨는 "제발, 꼭 살아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연평도 피격 사건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앞으로는 남편을 더 이해하고 아끼며 살아갈 것"이라고 자신의 희망을 말했다.
▲"잠을 자는게 아냐"…고된 찜질방 생활 = 기러기 아빠는 최근 인생에 있어 가장 비참한 '첫 눈'을 경험했다. 유모씨는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급히 비행기에 올랐다. 처자식이 있는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진 까닭이다.
유씨는 급작스런 사고로 졸지에 피난민 신세가 됐다. 한달 후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밟혀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유씨는 "특별휴가를 쓰고 인천으로 날아왔지만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언제 돌아갈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일도 손에 안잡히고 걱정만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연평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유씨는 다시 연평도에서 생계를 꾸릴 예정이다. 유씨는 "지금까지 추가도발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언제가는 꼭 다시 연평도에서 생계를 꾸릴 예정"이라며 "연평도를 떠난 삶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연평도에서 50년간 살아왔다는 한 노인은 "하루만 집에 있어도 온 몸이 쑤시는데, 벌써 20일째 밖에도 못 나가고 이러고 있으니 죽을 맛"이라며 "몸을 많이 안 쓰니 온몸이 더 아픈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뱃 사람이라고 소개한 김모씨는 "이곳의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몸이 쑤셔 힘들기만 하다"며 "차라리 고된 뱃일을 하는게 더 낫다"고 말했다. 80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박모씨는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연평도에 계시던 노모를 아파트에 모시고 있지만 적응을 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바로 해안가로 가서 각종 해삼물을 주워 온 뒤 또 옷갓 일을 다닌다"며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런 생활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건강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와 함께 박씨는 "육지 사람들이 섬에서 일주일을 버티기 힘든 것처럼 섬 사람들은 육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특히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더욱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직도 여전한 전쟁의 공포 =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전쟁의 잔상에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김모씨는 포탄이 날아들던 그때 당시를 잊지 못한다. 하늘에서 날아온 포탄은 김씨의 옆을 스쳐 건물을 강하게 때렸다. 그 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걸을 수 조차 없었다.
김씨는 "포탄이 조금만 내 쪽으로 왔다면 현재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 때 생각만 하면 정말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뱃일을 하는 또 다른 김모씨도 전쟁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일 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포성이 들리기도 하고, 어지러움증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김씨는 "어제도 머리가 너무 아파 약을 챙겨 먹었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가천의대길병원 정신과 조성진 교수는 "그나마 군인들은 전쟁 대비 훈련이라도 받았지만 민간인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심했을 것"이라며 "인천에 도착해 병원을 찾은 연평도 주민들을 면담했는데 대다수 급성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포 생활 끝나면…연평 주민들 '한숨만' = 이처럼 고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연평 주민들은 또 다른 걱정에 놓였다. 15일 김포시 양곡지구로 임시거주지를 옮기지만 그 후의 대책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연평 주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주민들은 15일 김포시 양곡지구 미분양 아파트로 임시거처를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의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 연평도 피난민들의 연평도 복귀 시점이 묘연한 대목이다.
연평도 한 주민은 "우리가 언제 연평도로 돌아가게 될지, 만약 육지에 자리를 잡는다면 무슨일을 하면 밥을 먹을지 생각만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한숨을 지었다. 또 "완전이주안에 대한 정부와의 협상도 분명 지지부진 할텐데 그때까지 어떻게 생활을 해야할지도 막막할 따름"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주민도 "노인들은 사실상 고향인 연평도를 두고 나올수 없는 처지인데 정부의 대책은 아직까지 피난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연평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이 하루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민들은 15일 김포시 양곡지구 임시거주지 이전을 위해 함께 살 세대를 직접 구성하고 있으며 인천시는 신청자를 대상으로 자격 심사를 벌이고 있다.
문찬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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