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상의,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초청 간담회 개최

문찬식 기자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13-11-08 15:04:05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부천상공회의소는 8일 회의실에서 ‘신호범 미국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초청 제264회 조찬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신호범 부의장은 “꿈을 가지고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신 부의장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1953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며 “무일푼으로 홀로 서울로 상경해 집도 없이 거리를 방황하다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과의사였던 미국인 양아버지를 만나 17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입양됐고 알파벳도 전혀 모르던 당시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하루에 세 시간도 못자고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신 부의장은 또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미국 군인 시절에 백인동료들과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동양인이라고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며 “한국에서도 아버지가 없다고 가난하다고 차별을 당했는데 자유를 찾아오게 된 미국 땅에서 인종차별을 받게 됐다. 그래서 정치인이 돼 법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미주 한인 정치인 가운데 5선으로 최다선 의원이며 최초의 동양인 상원의원이다.


세계입양아 협회 고문이기도 한 신 부의장은 한 입양소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몇 년 전 미네소타주에 사는 한 입양소녀에게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며 “어렵게 소녀의 생모를 찾아 한국으로 갔는데 인천공항에서 마중 나와 있었던 건 생모와 오빠 둘, 언니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녀는 ‘왜 오빠, 언니도 있는데 나만 입양을 보냈느냐’고 물었지만 생모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소녀만 잘 사는 나라에서 살라고 입양을 보냈다고 설명을 했다”며 “소녀는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고 미국에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신 부의장은 “인생에 많은 시련과 좌절이 있었지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생각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며 “오늘 참석한 여러분께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남들보다 한걸음 더 노력하면 그 꿈을 반드시 실현하게 될 것”이라며 이날의 간담회를 마쳤다. 문찬식 기자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