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용혈암지, 희귀 청자불상조각 다수 출토

정찬남 기자 / / 기사승인 : 2013-02-26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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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일보] 강진 도암면 석문리 용혈암지 시굴조사 중 청자불상의 편(片)이 쏟아져 또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석문리 덕룡산의 남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용혈암지(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47호)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 백련사(백련결사) 1세 원묘국사 요세(1163~1245년)가 1245년 4월에 용혈 암에 기거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때문에 1245년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용혈 암은 2세 정명국사 천인(1205~1248년)을 거쳐, 4세 진정국사 천책(1206-1294년), 7세 진감국사 무외가 기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묘국사와 정명국사는 이곳에서 입적했다.

용혈 암은 백련사 소속 암자로 백련사는 고려시대 8명의 국사를 배출했던 명찰로 당시 백련사와 용혈 암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강진군은 이러한 용혈 암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을 통해 학술조사를 실시, 암자의 규모와 성격을 밝히고자 암자 터와 용혈 동굴 내부를 조사했다.

시굴조사 결과, 유구는 건물 지 2동과, 석 열 2기 등이 확인됐다.

건물 지 1동과 석 열 2기는 조선시대 건물 지와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건물 내부에서 확인된 적심은 일정한 간격이 아닌 불규칙한 위치로 보아, 시기를 달리하는 유구가 중복돼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출토유물은 기와를 비 롯, 청자와 분청자 편(片)등이 출토됐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였던 강진의 위상을 대변하듯 청자 불상편(佛像片)등도 다량으로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지고 있는 대목이다.

청자 불상은 이전에도 많은 수량이 출토됐다.

하지만 정식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확인된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용혈암지 시굴조사를 통해 불상의 머리와 몸통 부분 등 많은 수량이 출토돼 국사가 주석했던 용혈 암의 위상과 고려청자의 성지(聖地) 강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강진군 박석환 문화관광과장은“그동안 문헌상으로만 일부 알려져 왔던 용혈암의 성격, 유적의 중요성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문화재청·전남도와 협의해 보다 정밀한 발굴조사를 실시, 용혈암의 역사적 규모와 성격을 밝히고 향후 체계적인 정비 복원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진=정찬남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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