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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현대산업개발 사옥. 아래 좌측 고 정세영 명예회장, 아래 우측 정몽규 회장. | ||
정세영 명예회장은 수상스키협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수상스키 마니아였으며, 수상스키 장소로 양수를 즐겨 찾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연고로 그는 생전에 ‘한강이 잘 보이는 양수리에 묻혔으면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고, 외아들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받든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떠난 아버지를 기리는 효심 지극한 아들의 사부곡(思父曲)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적인 관점에서는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정 명예회장이 영면해 있는 양수리 땅이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린벨트인 상수원보호구역에는 원칙적으로 장지 조성을 할 수 없다. 다만 1975년 7월 9일 이전부터 거주해온 원주민들만 예외로 둔다. 정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 고인과 정 회장은 서울을 주소지로 두고 있는 외지인이었다. 명백하게 불법을 저지른 셈이다.
당시 양평군은 불법 조성된 정 명예회장의 묘지를 적발하고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과 상수원보호구역 행위제한 위반 혐의 등으로 정 회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정 회장을 약식기소해 벌금을 부과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지법에 따르면 상수원보호구역에 장지를 조성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며 묘지는 이장해야 한다. 행정관청의 단속 이후에도 이장하지 않으면 1년에 두 번 500만원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정 회장은 선친의 묘소를 이장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이장은커녕 오히려 분묘 주변을 호화롭게 단장해 추모공원화 하는 모습이다. 사실상 벌금을 계속 내더라도 묘지는 이장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월 20일 정 명예회장 10주기를 맞아 묘지 부근에 다양한 조경수 대형 추모조형물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개최했다. 100여 톤에 달하는 직육면체 화강암으로 제작된 추모조형물 한쪽 면에는 정 명예회장의 상반신, 반대쪽 면에는 포니 자동차가 조각돼 있다. 추모조형물 앞뒤로는 보도블럭과 수백 평 넓이의 화단도 조성됐다.
문제는 이 또한 불법 행위라는 점이다. 장지 불법 조성으로도 모자라 관할 지자체장의 허가 없이 아예 정 명예회장 묘지를 하나의 명소로 꾸미려고 한 것이다. 이 같은 의도는 제막식 날 “이 곳을 찾는 분들이 아버님의 꿈과 희망에 대해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정 회장의 추모사에서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양평군은 지난 7월 24일 정 회장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구역에서의 행위제한 혐의로 양평경찰서에 고발했고, 정 회장은 지난달 4일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으로부터 상수원보호지역에 정 명예회장의 묘소를 조성하고 기념비 등을 설치해 수도법을 위반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이처럼 정 회장은 같은 혐의로 두 차례 약식기소됐으나 묘지와 조형물 조성 등으로 훼손된 토지가 원상복구될 가능성은 전무한 상황이다. 벌금과 이행강제금을 계속 납부하기만 하면 강제로 이장·철거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수백, 수천 만원의 벌금이 일반인에게는 큰돈이겠지만 재벌 총수에게는 푼돈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린벨트를 훼손하고 돈으로 때우는 일부 재력가들의 비양심적인 행태를 근절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 회장은 실제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선친의 묘지 옆 건물로 법정 주소를 옮김으로써 불법 장지 조성 혐의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법인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사망하고 한 달 보름 여 뒤인 2005년 7월 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로 주소를 옮겼다.
이후 정 회장은 2012년 3월 26일 선친의 묘지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 불과 약 19평(63.24㎡) 넓이의 단독주택으로 다시 등기를 이전했다. 그는 양수리에 자신 소유의 9584㎡ 부지를 갖고 있는데 이곳에 묘지를 조성하고 단독주택을 지은 것이다.
성북동에서 용산의 현대산업개발 본사까지는 10km 남짓한 거리다. 반면 양수리에서는 40km가 훨씬 넘는다. 이동시간이 2배 이상은 더 소요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디까지나 등기부등본상 주소지이므로 정 회장이 실제로 양수리에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릴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경제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분초를 쪼개서 사는 재벌그룹 총수가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양수리의 허름하고 좁은 단독주택에서 출퇴근한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며 “아버지 묘소를 불법 조성한 사실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것 같다”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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