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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 축제는 하루 전날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헌 결정으로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
서울광장 둘레에는 둥그런 폴리스라인이 세워졌다. 대한문 앞과 서울도서관 근처에는 성소수자들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시위가 진행됐다.
이날 퀴어축제에는 주최 측 추산 3만여명(경찰 추산 7000명)이 함께했다. 반대 측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여명이 참가했다.
축제 참가자들은 부스에서 파는 기념품을 사거나, 캐리커쳐 그리기와 한복 입고 사진 찍기 등 다양한 행사를 즐겼다.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한복을 입은 사람부터 무지개 현수막을 망토처럼 두른 사람, 볼에 무지개를 그려넣은 사람까지 주저하지 않고 개성을 드러낸 사람들로 북적였다. 폴리스 라인 안의 서울광장은 중간중간 들려오는 '동성애 반대' 구호에도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초록색 가발을 쓰고 보라색 꽃을 머리에 단 윤모(20)씨는 "오늘은 평소보다 메이크업을 좀더 진하게 했다"며 "지난해보다 부스가 두배 늘었는데 그만큼 우리를 지지하는 단체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또 "이번 축제가 계속 미루어졌고 안 열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서 기분이 안 좋았지만 오늘 이렇게 서울의 중심, 서울광장에서 열려 너무 기쁘고 신난다"고 소감을 전했다.
2살·4살짜리 자녀와 함께 퀴어축제를 찾은 노선이(여)씨는 "계속 감추고 있다가 1년에 한번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날인데 더 즐겁게 보냈으면 한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씨는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오늘을 '퀴어 명절'이라고 하더라"라며 "명절에는 원래 덕담도 주고 받고 하는 날이니 오늘 그들에게 힘이 되주고자 왔다"고 웃어보였다.
매년 퀴어축제에 참가했다는 김모(34)씨는 "게이 중에도 이 행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고 기독교인 중에도 우리를 찬성해주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반대쪽에서 맞불 시위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어제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헌 발표가 났는데 오늘 퍼레이드를 앞두고 좋은 일인 것 같다. 부럽다"고 말했다.
이날 축제에는 외국인들이 쉽게 눈에 띌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미국에서 온 엘리샤(27·여)씨는 "성소수자인 내 친구들을 지지해주고 축하해주고자 왔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를 전세계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다. 성숙하게 행사를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을 반대하는 이들은 '사랑'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헤더 레스코(26·여)씨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는 곧 인권이라고 생각을 한다"며 "평화로운 시위인데 반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축제장에는 80여개의 부스가 차려졌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13개국 대사관들도 참가했다. 각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와 노동당과 정의당의 부스도 열렸다.
전통 혼례복을 빌려주는 부스에서 만난 닉네임 웡키(28여)씨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행사이니 혐오세력까지도 에너지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도 성소수자들은 원래 있었던 것인데도 퀴어라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개념이 강해 그것에 균열 주기 위해 덥지만 한복을 컨셉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 아메리카어페럴과 영국 비누 브랜드 러쉬도 부스를 차렸다. 러쉬는 한정판 '사랑 비누'를 만들어 팔았다. 3시간 만에 300개가 팔렸다. 수익금을 캠페인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장애인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도 함께했다. 이형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성소수자들이 강자이면 이렇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겠나. 조만간 이들의 인권도 존중 받는 사회가 되겠지만 그때까지 우리들도 계속 연대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오후 2시40분께 축제 현장을 찾았다.
팔에 여전히 붕대를 감은 리퍼트 대사는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서 부스 4~5곳을 돌며 축제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부스를 먼저 찾았다. 활동가에게 직접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떻게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등을 물었다.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를 축하한다는 활동가의 말에는 "고맙다. 매우 흥미로운 타이밍"이라며 "이들을 위해 일해주고 축제에 참석해줘서 고맙고 앞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해달라"고 전했다.
오후 2시30분께 시작된 개막무대에서는 풍물패 '바람소리'의 공연을 시작으로 댄스팀의 화려한 무대가 이어졌다. 공연에 나선 이들은 "게이도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해 환호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개막 무대에서 강명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사회 구조에 항거하는 목소리가 담겼던 이 서울광장에 우리 퀴어가 모였다"며 "오늘 이 축제가 열리기까지 노숙을 불사하고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부터 인권침해감시단, 부스 참여팀 등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미국 입양 트랜스젠더이자 인권활동가인 폴린 박씨는 축하 인사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분들보다 우리의 사랑이 더 강력하다. 저들의 혐오는 우리의 사랑으로 정복될 것"이라며 "다음에 내가 이 행사를 찾았을 때는 지금 북을 두드리는 저 분들이 LGBT를 응원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LGBT인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한국 정부가 발의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오후 5시께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고조됐다.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2가와 퇴계로2가, 회현사거리, 소공로를 지나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2.6㎞의 코스였다.
행진을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보수 단체 회원들이 퍼레이드 차량 앞에 드러눕거나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소동을 벌여 행진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여성은 경찰이 세워놓은 원뿔을 퍼레이드 차량 위에 있는 댄스팀에게 던지기도 했다. 행렬 옆으로는 '동성애 OUT'을 들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럼에도 축제 참가자들은 퍼레이드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댄스곡에 맞춰 손을 좌우로 흔들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퍼레이드 차량 위에 있는 댄스팀의 춤사위에 차량도 흔들거렸다. 서울 도심 한복판은 길거리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가며 춤을 추고 있던 중학교 3학년생 이모(16)군은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하고 항상 감추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속 시원히 풀어놓을 수 있어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오늘 여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여전히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우리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행인들은 신기한 듯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도 보였고 반면에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명동역 인근에 서있던 대학생 서지호(24)씨는 "신선한 충격"이라며 "성소수자들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주변 상인들이 봤을 때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명동의 한 안경점에서 일하는 홍석민(40)씨는 "한국 사회도 이제 문화가 많이 성숙하고 개방된 것 같다"며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고 그들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광장에서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지난 13일 이태원 파티,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의 불교 성소수자 초청법회, 18~21일 퀴어영화제를 진행해왔다. 이날 퍼레이드를 끝으로 퀴어축제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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