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그룹 장손이 사촌그룹에서 더부살이하는 까닭은?

민장홍 기자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15-05-18 15: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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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정몽국 회장, ‘형제의 난’ 패배 후 실각…A그룹 입사 후 탄탄가도
사진캡션> 한라그룹이 입주해있는 송파구 신천동
시그마타워(사진 좌측 아래 정몽원 회장)


[시민일보=민장홍 기자]재벌가에서 형제 간 상속재산이나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이른 바 ‘형제의 난’으로 그 실례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7월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40대 재벌그룹에서 지금까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은 모두 17개로 집계됐다. 재벌 2곳 중 1곳은 ‘형제의 난’을 겪은 셈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바로 손아래 동생 고 정인영 명예회장이 세운 한라그룹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과 차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각종 소송전을 벌이다가 우애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두 형제가 이처럼 서로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정 명예회장이 94년 말 공격적인 경영방식을 추구한 차남 정몽원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에서 불씨가 싹 텄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정몽국 회장은 그룹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경영 스타일 차이로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진 두 형제는 정몽원 회장이 97년 그룹 회장에 오르며 더 어색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문제는 한라그룹이 정몽원 회장 취임 1년도 안된 97년 12월 한라중공업에 대한 과잉 투자의 여파로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발생했다. 당시 정몽원 회장은 그룹이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계 투자회사인 로스차일드와 RH시멘트를 설립한 뒤 로스차일드로부터 브릿지론 4000억원을 대출 받아 한라시멘트 영업권을 사들였다. 이후 정몽원 회장은 세계적인 시멘트사인 라파즈에 RH시멘트 지분 70%를 매각해 브릿지론을 갚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정몽국 회장의 한라시멘트·한라콘크리드 보유 지분을 형의 동의 없이 양도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정몽국 회장은 2003년 1월 한라시멘트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동생과의 법적 분쟁에 돌입했고, 그해 3월에는 한라콘크리트와 정몽원 회장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내 주식 반환을 요구했다. 이어 4월과 6월에는 각각 자신 소유의 한라시멘트 주식 71만719주와 한라콘크리트 주식 2만5천740주를 임의로 타인에게 매도했다는 이유로 정몽원 회장 등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또 정몽국 회장은 2005년 11월 법원에서 “정몽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라파즈 한라시멘트 주식회사 923만주와 한라건설 76만주 중 각각 391만주와 22만주를 인도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자 다음달 “정몽원 회장 명의의 라파즈 한라시멘트 보통주식 1356만여 주 중 정몽국 전 부회장의 몫 총 450여 만주를 돌려 달라”는 주식배당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에서 정몽국 회장의 손을 들어줬던 법원은 2심에서 정몽원 회장이 정몽국 회장에게 회사 지분을 돌려줄 구체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009년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6년여에 걸쳤던 두 형제의 ‘쩐의 전쟁’은 방점을 찍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패한 정몽국 회장은 한라건설 주식을 전량 처분하고 한라그룹과 완전히 연을 끊었다. 장기간의 소송전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두 형제는 최근 제사도 같이 지내는 등 왕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겉으로만 화해를 한 것으로 비춰질 뿐 여전히 앙금이 가시지 않았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바로 정몽국 회장의 장남 정모씨의 거취 때문이다.

76년생인 정씨는 현재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A그룹에 몸담고 있다. A그룹 창업주는 고 정인영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A그룹 회장은 정몽국·정몽원 회장에게는 사촌동생이 된다. 다시 말해 한라그룹 창업주의 장손이 한라그룹이 아닌 5촌 당숙의 회사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A그룹에 입사한 정모씨의 현재 직책은 기획팀 이사다. 금감원 전자공시를 살펴보면 2010년 부장에서 이사대우로, 다시 2011년 이사대우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그는 A그룹 해외계열사의 대표와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재직기간에 비하면 승진도 빠른 편이고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어 재계 호사가들은 “A그룹 회장이 한라그룹에서 쫓겨난 조카를 잘 보듬어주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한라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씨가 정몽원 회장 눈 밖에 났다기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A그룹을 택한 것으로 안다”며 “아무래도 아버지를 밀어낸 한라그룹에 적을 두기는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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