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뉴시스 / / 기사승인 : 2013-06-24 13: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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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수많은 반대·국가기관 무관심 이겨낸 성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내 보수단체들의 수많은 반대 운동을 이겨내고 국가 기관의 무관심을 극복한 성과였다.


지난 21일 출판된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백서 '1980년 5월의 기록, 인류의 유산되다'에는 2009년 12월 유네스코 등재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11년 5월 5·18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긴박했던 위기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3일 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1월 유네스코 본부는 추진위원회가 제출한 등재 신청서를 검토한 뒤 수정신청서 제출을 요구했다.


등재를 주관한 광주시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5·18기념재단이 소장하지 않고 있는 5·18기록물을 등재 신청하기 위해서는 소장 기관들의 동의서가 반드시 첨부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의서를 첨부하지 못할 경우 등재 신청 목록에서 기록물을 제외해야 했다. 계엄군의 진압작전 등 육군본부 문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 및 조사 기록, 국회 회의록 등이 대상이었다. 수정 신청서 제출 기한은 2011년 1월15일까지였다.


하지만 추진위는 5일을 남겨둔 1월10일까지 단 한 곳에서도 동의서를 받지 못했다.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육군본부와 국가기록원, 대검찰청, 국회도서관 등이 등재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눈치를 보며 등재 동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결국 국가기록원은 등재 반대세력을 의식한 고육책으로 동의서가 아닌 '등재확인서'를 발급했으며 대검찰청은 끝까지 등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행히 육군본부와 국회도서관의 동의로 5·18 재판 관련 기록 5권 등 일부 기록물을 등재 신청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 기관 등의 무관심과 보수세력 눈치보기는 5·18기록물의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가장 위협했던 것은 국내 보수 세력의 등재 반대 운동이었다.


2010년 10월,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의 서석구 대표 등 국내 보수단체가 유네스코 본부에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반대 긴급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서 대표 등은 '광주사건은 북한독재체제의 대남공장에 의해 계획되고 날조된 불행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했다.


또 '5·18 광주사태의 살인자들은 광주시민도 한국군도 한국정부도 미국도 아니라 북한독재체제와 북한특수부대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남한 내부의 그들 추종자들이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보수단체의 등재 반대로 인해 유네스코 본부는 추진위에 "이런 사례가 없었다. 한국 내 의견을 통일해 달라"며 신청서 심사를 보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추진위는 "5·18은 이미 한국 정부와 국회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고 3개의 관련 법률이 제정돼 있으며 희생자들은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 같은 논란을 정리했다. 당시 가해자였던 육군본부와 주한미대사관이 등재에 동의한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단체의 등재 반대 운동이 2011년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심의하는 국제자문위원회 총회 개최를 10여 일 앞두고 국내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서석구 대표가 아침 방송에 출연해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 6000명이 서해로 침투해 광주로 진입했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뒤 북으로 그대로 돌아갔다"는 근거 없는 왜곡 발언을 한 것이 시발이 됐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총회에서 비우호적 분위기가 또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를 정리한 것은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였다. 김 총리는 '5·18은 이미 법적으로 종결됐고 책임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종결돼 처벌됐다'는 내용을 주 유네스코 한국대사관에 전달했으며 한국대사가 이를 공식 서한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발송하면서 문제가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추진위 관계자는 "당시 심의 보류 소식이 들어오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며 "다행히 김 총리의 입장이 공식 서한으로 전달됐고 영국 맨체스터 회의장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백서에는 추진위원회가 5·18기록물이 등재된 뒤 당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던 박지성 선수의 축하 멘트를 받으려고 시도했지만 다른 일정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던 에피소드도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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