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원전 가동 중단까지 겹치면서 올 여름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된다.
치솟는 전기 수요를 제한된 전기 공급량이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전력난을 해결할 뾰족한 방도가 없다. 정부는 각 산업체와 가정에 절전을 호소할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현실화되면서 차상위계층과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전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 전기 의존률이 높은 저소득 계층이 더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외부에서 작업하다 열사병이나 실신, 탈진 등 각종 온열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일부 병원들은 정전에 대비한 비상전력체계(UPS)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불볕더위에 전력난까지 '이중고'… 판자촌의 잔인한 여름나기
낮 최고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무허가 쪽방촌. 주민들은 변변한 냉방시설도 없이 불볕더위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얼기설기 나무와 천으로 엮어 만든 간이 천막과 녹슨 컨테이너가 이곳 주민들의 거처였다. 행여 비라도 샐까 지붕을 덮은 비닐 탓인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 별다를 바 없이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길에는 바람 한 줄기 불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주민들은 골목 그늘에 깔개를 깔고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낡은 천막 밑 그늘이 이들에게 유일한 '휴식처'지만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주민들은 수면장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7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모(73) 할머니는 "선풍기 틀고 자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데 올해는 전력난에다가 전기료 무서워서 마음대로 틀지도 못해 잠도 못자고 환장할 노릇"이라며 "집에 있으며 숨이 막혀서 밖에 나와 있는데도 땀이 나고, 매일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선모(56)씨는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돈도 없어서 선풍기는 아예 켜지도 않는다"며 "불볕더위에 일도 없고 찜질방 같은 방에 하루 종일 있는 건 정말 고역"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볕더위에 전력난까지 겹치면서 자는 것도, 먹는 것도 힘든 쪽방촌 주민들에게 올 여름은 잔인하다.
◇폭염일 때 오후 2~5시 실외작업 중단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재해가 우려된다.
높은 기온 탓에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질병이 악화되거나 무리한 작업으로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여름철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용노동부(고용부)가 '폭염 대비 사업장 행동 요령'을 마련하고 각 사업장을 대상으로 감독에 나섰다.
고용부는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야외활동을 취소하고, 기온이 최고조에 달하는 오후 2~5시 사이에는 실외작업을 일시 중단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기상청은 최고기온 33℃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를, 35℃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고용부가 제시한 '폭염대비 사업장 행동요령'에는 폭염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사업장에 지켜야 할 규칙과 권고사항 등을 담겨 있다.
권고사항으로는 ▲사업장에 가까운 병원 연락처를 미리 확인할 것 ▲온도계와 체온계를 두고 작업환경과 근로자의 상태를 수시 확인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건설 현장이나 실외사업장에는 폭염특보가 발령될 경우 오후 2~5시의 가장 무더운 시간대에 휴식을 할 수 있는 '무더위 휴식 시간제'를 운영할 것을 권하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됐을 경우 건설 현장이나 실외작업 근로자들은 아이스 팩이 부착된 조끼를 입어야 한다. 또 20분 간격으로 1컵 정도의 시원한 물이나 식염수(소금)를 섭취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고열작업장은 근로자들에게 물과 소금을 제공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6~9월 야외작업이 많은 건설현장에서는 더위 때문에 안전모 등 보호구 착용에 소홀하게 되는 등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며 "안전 활동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산업재해로부터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력난, 병원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이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입원실이 있는 중소병원과 의원 과반이 정전에 대비한 비상전력체계(UPS)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의료기관 입원환경 현황조사 결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입원실을 운영하는 중소병원과 의원 252곳 가운데 50.8%가 비상전력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정전 전원장치'라고도 불리는 UPS는 갑작스런 전압변화나 정전, 주파수 변동에 대비해 일정한 전압을 유지시키는 장비와 시스템이다.
병·의원 252곳 가운데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회복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의료기관 전체에 비상전력체계를 구비한 곳은 7.9%에 불과했다. 특히 입원 병의원 중 수술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병원 93곳·의원 72곳) 165곳 가운데 절반(49.7%)은 수술실에조차 무정전 전원장치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병원의 경우 이미 지난 2007년 조사에서 비상전력체계 시행 비율이 95%로 높게 나타나 대규모 정전 사태인 이른바 '블랙아웃'에 대비한 전원공급장치를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중소병원과 의원 중에서 비상전력체계를 갖춘 곳이 종합병원에 비해 현저히 적다"며 "비상전력까지 완전히 차단되는 블랙아웃이 되면 병원에서 최악의 경우 수술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갑작스런 정전사태가 발생할 경우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아직 비상전력체계를 갖추지 못한 병원들에 정부가 재정 지원이나 세금 감면 등을 통해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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