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34)씨로 굳어진 듯 보였던 LG그룹 후계구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외아들인 구형모(25)씨가 강력한 라이벌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것.
구자경 명예회장이 셋째 아들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남다른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9월 중순 남용 전 LG전자 부회장의 용퇴로 전문경영인에서 오너 경영체제로 환원한 LG전자가 구본준 부회장을 정기 이사회도 거치지 않고 수장으로 선임한 것도 어느 정도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공교롭게도 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로 부임한 시기와 맞물려서 IT벤처기업의 투자를 늘리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구형모씨에게 재계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유교적 색깔이 짙은 LG家는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지는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외아들 구원모씨를 잃은 구본무 회장이 아랫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한 것도 이러한 가풍과 무관하지 않다.
재계에서는 구광모씨가 올해 34살로 젊은 나이이고 구랍 17일 단행된 LG그룹 인사에서 과장 직급을 그대로 유지한 것을 감안했을 때, LG그룹의 경영권은 구본무 회장에서 곧바로 구광모씨에게로 넘어가지 않고 구본준 부회장을 거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구형모씨가 현재는 LG그룹의 외곽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언제든 중심으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구형모씨가 LG그룹 후계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구형모씨는 지난 1월 2009년말까지 -44억원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던 LG그룹 계열사 지흥의 지분 100%(22만주)를 전량 개인소유로 만들었다. 공동 2대주주 서보원.서민원씨의 각각 4.5%(1만주)를 주당 5000원, 총 1억원을 주고 매입한 것. 지흥은 구형모씨가 지난 2008년 4월 납입자본금 10억원(20만주)을 전액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지난달 11일 유상증자(40만주.5000원)를 단행했으며, 이번 유상증자도 구형모씨가 20억원 전액을 참여했다.
지흥은 광학필름 제조 및 판매 회사인데, 광학필름 제조는 LG디스플레이와 밀접한 사업연관성을 갖는다. 구본준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필립스LCD를 세운 장본인이며, 현재 LG의 디스플레이 사업이 세계 1등으로 도약하는 성공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형모씨가 구본준 부회장의 지시를 받고 지흥을 설립했을 것”이라면서 “향후 지흥이 LG디스플레이에 합병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구형모씨의 개인회사인 지흥은 지난해부터 생산설비 등에 대한 투자확대 및 재무개선에 착수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구본준 부회장이 LG그룹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여 기업가치 개선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또 구형모씨는 지난해 12월 말 지흥을 통해 산업용 온도센서제조업체인 동양센서 지분 19%를 3억원 가량에 사들였다. 하반기부터 매연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디젤자동차용 센서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인 동양센서는 향후 2-3년 내에 상장을 목표로 준비를 하고 있다.
구형모씨가 벤처투자로 보폭을 넓히는 동안 구광모씨는 미국에서 경영수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6년 LG전자 재정부문 대리로 입사한 후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구광모씨는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2009년 11월 LG전자 과장으로 복직했고 그해 연말부터 뉴저지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내에 휴대전화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샌디에이고와 그 외 제품을 총괄하는 뉴저지 2곳에 법인을 두고 있다. 뉴저지법인은 경영기획.마케팅 등 업무 영역이 넓어 경영수업을 받기 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구광모씨는 이곳에서 LG전자 미국법인의 사세 확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구광모씨는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 4.67%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구본무 회장(10.68%)과 구본준(7.58%) 부회장, 구본능(5.03%) 희성그룹 회장에 이은 LG의 4대 주주다. 이에 반해 구형모씨의 (주)LG 지분은 0.48%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흥과 동양센서 등의 기업가치가 호전된다면 추가지분을 매입할 기반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관계자는 “구본준 부회장이 구본무 회장과 구광모씨 간의 경영권 승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면 구형모씨는 LG그룹 지배구조에 자연스럽게 편입된다”면서 “결국 구본준 부회장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구광모씨와 구형모씨의 대결구도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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