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인수 자격 박탈될 경우 즉각 소송제기 ‘맞대응’
현대건설 매각이 사실상 무산됐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맺은 지분매각 양해각서(MOU) 해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지난 17일 ‘양해각서 해지안’과 ‘현대그룹과의 주식매매계약(본계약) 체결 승인안’ 등을 주주협의회에 상정하고 22일까지 안건에 대한 의견을 취합하기로 했다.
양해각서 해지안 외에 본계약 체결 승인안은 현대그룹이 법원에 낸 ‘양해각서 가처분 해지금지’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즉 법원이 현대그룹의 가처분을 인정하면,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는 그대로 유지하되 본계약에서 부결해 현대그룹의 건설 인수를 막겠다는 뜻이다.
본계약 체결 승인안은 채권단의 20%(의결권 비율 기준)만 반대해도 부결된다. 양해각서 해지안은 채권단의 75%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외환은행(25%), 정책금융공사(22.5%), 우리은행(21.4%) 등 3개 기관이 모두 20%가 넘는 의결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양해각서 해지안의 표결 결과와 관계없이 본계약 체결여부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의결권 22.5%를 가지고 있는 정책금융공사가 현대그룹이 조달한 자금에 대한 의혹을 밝히지 못할 경우 인수자격을 해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우선인수협상자로 선정됐던 현대그룹의 건설 인수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예비인수협상자로 선정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지고 가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예비협상대상자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부여문제와 관련, 채권단 관계자는 “주주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의미지, 곧바로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결국 올해 시장에 나온 인수합병(M&A) 매물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현대건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채권단, 공정하게 심사했다더니… 책임 상실, 말바꾸기 ‘급급’
현대건설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날인 11월15일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만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현대그룹은 5조5100억원, 현대차는 5조1000억원을 써냈다. 재무적요소 65%, 비재무적요소 35%를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간발의 차이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보통 인수의향서를 접수 하고 평가 절차를 거쳐 우선인수협상자를 선정하기까지는 적어도 1~2주가 걸린다. 과거 진행된 M&A들은 적어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현대건설 채권단은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한지 하루만인 11월16일 우선인수협상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빠른 결과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서두른 감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채권단은 “이번 입찰에는 수십명의 전문 평가단에서 특별히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심도있게 평가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특별히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해 결과에 의심이 없다던 채권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공표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M&A는 대출계약서 제출해야?
채권단은 이미 현대그룹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놓고는 그룹이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조달한 1조2000억원의 출처를 문제 삼았다.
즉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다던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채권단은 총자산 215만8000유로(약 33억원) 규모의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이 1조2000억원의 막대한 예금을 보유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든 대출계약 관련 사항이 세세히 기록돼 있는 70~80페이지의 대출계약서 등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대출 이율 등 모든 영업 비밀 등이 적혀있는 대출계약서 제출은 부당한 요구라며 거부했다. 대신 무보증, 무담보로 빌린 대출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나티시스은행이 발급한 확인서를 두 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두 차례 걸쳐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주주협의회와 시장의 의혹을 해소하기 부족하고 MOU에 정한 확약을 성실히 이행했다고 보기 미흡한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그리고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 해지안을 비롯한 4개 안건을 주주협의회에 부의하며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대출계약서 제출 불응으로 양해각서가 해지되는 선례를 남기면 이제부터 모든 M&A에는 대출계약서 제출이 요구사항이 되는 건가”라고 반문하며 “영업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누가 인수에 참여하려고 하겠느냐. 결국 M&A 시장이 마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M&A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문제나 의혹이 있었으면 인수의향서 심사에서 감점을 하든 점수를 매길 것이지, 심사를 마친 후 우선인수협상자로 선정한 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방법이 잘못됐다”면서 “M&A 시장에 혼란만 가중 시켜놓고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MOU 해지안이 가결되거나 주식매매계약 체결 승인안이 부결돼 현대건설 인수자격이 박탈될 경우, 즉각 법적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해 현대그룹과 현대차 간의 민·형사 소송도 현재 수건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그룹이 우선인수협상자 지위를 박탈당할 경우 소송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결국 법정으로 자리를 옮겨 장기전에 들어갈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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