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전통문화축제 ‘세계의 축제로’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5-02 19: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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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회 맞아 한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 판소리·살풀이승무·가야금등 전통공연 선봬

전통차 시음회등 인사동 거리체험행사 호평

프랑스·인도네시아등 세계예술인 자리 빛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인사동일대에서 지난 4월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시민들과 함께 하는 제20회 인사전통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됐다.

종로구(구청장 김충용)와 사단법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이 함께 마련한 이번 축제는 문화지구지정 5주년을 기념하고 서울을 대표할만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서의 전통문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승해 국제적인 행사로 확대하고자 마련한 것이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인사전통문화축제에서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먼저 4월28일 오후 2시30분 북인사마당 장승 앞에서는 개막식 전 행사로 장승제가 개최됐다.

마을 수호신의 하나인 장승에게 지내는 동제(洞祭)인 장승제는 인사전통문화지구의 번영을 축원하는 자리로써 우리나라 고유 전통제례의식으로 펼쳐졌다.

또한 축제 기간 중 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인사동 고미술· 현대미술 축제가 동시에 개최됐다.

4월28일부터 행사종반까지 개최되는 인사동 거리 체험행사에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 연출됐다.

남인사 문화마당에서 축제 기간동안 열리는 장승제와 솟대전시 및 만들기 체험, 천연염색 시연 및 전시, 전통차 시음 회 등이다.

관악구 봉천동 김미연(24)씨는 “한지로 만든 옷을 입은 모델이 인상 깊었고 소원을 한지에 직접 적어 새끼줄에 끼우는 것이 재미있었다”며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과거 선비들의 풍속을 직접 경험해 좋았고 이러한 전통문화를 살릴 수 있는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행사에서는 개막식전 행사인 장승제를 시작으로 ▲판소리완창 ▲가야금병창 ▲살풀이승무 ▲전통무용 ▲북춤 ▲국악 등이 선보여 우리나라 전통공연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아울러 아시아 태평양 무용 예술단의 ▲인도 사트리아 댄스 ▲중국경극 ▲베트남 음악공연 등도 함께 열려 모처럼 보는 이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 만점인 조선시대 경찰 임무를 맡았던 ‘포도대장과 순라군들’ 거리행차는 전통문화를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

인사동 길과 남인사마당 등 인사동 일대에서 펼쳐진 이번 축제는 개막식에 맞춰 타악그룹 광명의 ▲전통타악 공연 ▲가야금 산조 ▲경기민요 ▲남도민요 ▲타악콘서트 등 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오후 3시부터 남인사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김충용 구청장, 박 진 의원, 홍기서 구의회의장 등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 베네수엘라, 스웨덴, 인도네시아 등 외국대사와 부인 등 국내·외빈들이 참석했다.

특히 인사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프랑스 몽마르트르 지역 문화예술인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29일에는 ▲인도네시아 디딕 창작무용 ▲중국경극의 무술, 시, 소리, 음악을 겸한 창극 ▲베트남의 베트남공연과 음악 ▲우즈베키스탄의 딜히로즈와 춤 ▲한국의 불교무예 선무공연 등이 진행됐다.

인사동은 서울의 600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고미술품 판매, 갤러리, 전통찻집이 즐비하던 곳에서 전통을 익히고 각종 문화행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평일은 3만, 주말은 10만여명의 내·외국 관광객이 찾는 전통문화의 거리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해 문화집적지역의 특징을 국내·외에 홍보하기 위해 연중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으며, 이중 가장 대표적인 행사인 ‘인사전통문화축제’는 풍부한 볼거리와 이벤트로 ‘한국의 멋’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격을 선사해 왔다.



인사동은...

한국인 삶 ‘고스란히’거리 전체가 박물관

한국의 문화재 인사동은 고려시대(918~1392)부터 조선시대(1392~1910)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삶과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원각사로부터 조선시대의 고관대작들의 주거지, 그리고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됐던 곳이자 해방 이후에는 화랑과 필방, 표구점 등이 등장해서 오늘날 문화의 거리 인사동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인사동의 역사를 보면 중심에서 중심으로 과거 충훈부(忠勳府), 이문(里門) 등이 있던 조선 도읍의 중심지에서 현재 전통문화와 미술문화 일번지로 탈바꿈한 인사동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2가부터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예전의 인사동 길은 종로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 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 한다.

종로 거리는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육주비전 등의 궁중에 납품하는 물건을 취급하는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1919년 2월20일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을 중심으로 전문학교 대표들이 모여 제1회 학생지도자 회의가 열리는 등 인사동은 3·1운동의 대표적 본거지 중 하나이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의 장소로 삼았던 태화관 자리에는 현재 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 밖에도 민영환선생 자결터(공평동 2) 등 인사동은 금세기 초 민족 독립의 염원을 담은 거리였다.

이후 인사동 거리는 종로라는 전통상가의 면모를 반영한다.

이미 1960년대에는 골동품점, 필방, 표구점, 고서점 등이 형성됐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이들과 관련된 지업사, 민속공예점 등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인사동 거리는 명실공히 전통문화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오늘날 인사동은 전통과 현대, 신구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다양함과 생생함을 지닌 살아있는 문화이자 박물관과 같은 거리이다. 거리 곳곳에 한국의 역사가 배어있는 유적지들이 남아 있고, 또 한편으로 골목마다 들어선 전통찻집과 음식점, 묵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필방, 고미술상과 화랑 그리고 생활 속의 예술을 구현하는 공예업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강선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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