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낙안면 석정마을 김병무공 적덕비 제막

위종선 / [email protected] / 기사승인 : 2015-05-19 12: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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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나눔의 의미 되새기게 하는 신선한 메시지 전달

[순천=위종선 기자]전남 순천시 낙안면 석정마을에서 나눔과 베품의 표상인 김병무공(1903~1980)의 선행과 공덕을 기리는 적덕비 제막식을 가졌다.

적덕비는 지난해 12월 발행된 순천대박물관지 제4호에 ‘목비’에 관한 내용이 실리면서 참된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신선한 메시지 전달을 하기 위해 후손들이 제막식 준비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김병무공 적덕비 제막식은 지난 17일 낙안면 석정마을 당산앞 삼거리에서 낙안면장을 비롯한 시`도의원, 노인회장, 마을주민 일가친지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소석(호) 김공은 낙안면 석흥리 출신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선비로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지극히 깊었으며, 매사에 침착하고 선행을 일삼아 가며 성장하면서 언제나 마을과 이웃의 불쌍한 이들에게 온정을 베풀었고 곤궁한 나그네가 문 앞에 오면 밥은 물론이요 새옷 헌옷을 가리지 않고 주고, 때로는 하루에 4~5회 이상 밥을 지어 배고파 지내는 과객들에게 먹이고 싸서 보내는 일이 수십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1956년과 1962년 수해를 당한 마을주민 80여호에 백미를 지급하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나무와 대나무를 제공하는 등 수년간 마을 서당을 운영하면서도 학채(학비)를 받지 않고 이웃을 돕는 일을 실천해 석정마을에서 선행표창장과 함께 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며, 참된 선행으로 순천향교에서 선행포천장을 받기도 했다.

목비를 살펴보면 [소석김공병무적덕비(小石金公柄武積德碑), 유공의덕(惟公懿德)선수기신(先修其身) 공의 아름다운 덕은 먼저 자신을 닦은 데서 시작되었고, 극소가성(克紹家聲)유관유인(惟寬惟仁) 능히 집안 명성을 계승하여 오로지 관대하고 인자하였네, 자선지술(慈善之術)동개시비(洞開柴扉) 골짜기에 살면서도 사립문을 활짝 열어 선행을 베풀었네, 급인지풍(急人之風)주인지기(賙人之饑) 남의 어려움을 다급하게 여겨 굶주리는 이들을 먹여 살렸으니, 유기휴택(惟其休澤)여수지장(如水之長) 그 아름다은 은택은 물이 흐르듯 이어졌어라, 내술공장(乃述公章)용시유양(庸是揄揚) 이에 아름다운 행적을 기록하여 널리 드날리도다. 계유(1933년) 8월 과객 일동] 이라고 한 것을 보면 김공의 선행과 공덕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애석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날 참석한 적덕비문을 지은 전 효산고등학교장을 역임한 김명수 교장선생님은 “목비를 과객(거지)들이 세운 년대가 서기 1933년으로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로 어려운 시대였으나 배고픔을 달래주고 의류를 나누어 준 김병무공의 선행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 또한 적은 성의나마 마음이 중요한 것임을 느끼고 깨우쳐준 자랑스런 목비라며 문화유산으로 가치있는 사료로, 인륜의 도를 보여준 예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손인 손자 김점태(순천시청 시민소통과장)씨는 “비석에 할아버지의 공적을 세세히 다 담지는 못했지만 늦게나마 할아버지의 적덕비를 건립하게 된 것을 후손으로서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향약의 4대 강목중 하나인 좋은일은 서로 권한다는 덕업상권의 정신을 상기하면서 할아버지의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권장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모아 적덕비를 세우게 됐다”고 비석 건립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빈곤했던 시대에 이웃에 대한 나눔과 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김병무공의 선행이 귀감이 되어 우리 사회가 더욱 따뜻하고 훈훈하게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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