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찾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 형촌마을과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은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었다.
형촌마을은 예부터 대학총장이나 연예인 등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유명하다. 평당 25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를 호가할 정도로 고급 빌라가 몰려 있는 이곳은 한때 영화배우 심은하도 정치인인 남편 지상욱씨와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발생한 산사태로 흘러내린 토사와 물은 평화로운 마을을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피해가 난 집들은 대부분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양 옆에 있었다. 집들의 외형은 비교적 온전했지만 외벽은 토사로 도배가 돼 있었다.
이번 산사태는 특히 우면산 바로 아래에 있는 고급 빌라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한 빌라 대문 앞에 나뒹구는 바위가 산사태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구학서 신세계 회장 부인 양모(63)씨는 침수된 빌라 지하실을 살펴보다가 토사에 휘말려 사망했다.
오후 들어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마을을 휘젓던 흙탕물은 물러갔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토사와 뿌리째 뽑혀 떠내려온 나무들로 인해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주인을 잃은 외제차들은 토사에 떠밀려 마을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형촌마을 인근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모인 주민들은 사고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곳에서 20년째 슈퍼와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모(58·여)씨는 "오전 7시반쯤 비가 쏟아졌다. 우리집 아저씨가 하수도에 찌꺼기가 막혀서 흙물이 있는 줄 알고 곡괭이 들고 가다가 물살이 세서 떠내려 갈 뻔했다. 아찔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을 위에서부터 차도 떠내려 오고, 나무도 떠내려 와서 급하게 밖으로 피했다"고 말했다.
김모(74·여) 할머니는 "30년을 넘게 살았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며 "원래 산 가까이 사는 게 좋은 줄 알고 살았는데 오늘 보니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고 몸을 떨었다.
김모(78) 할아버지는 인재가 겹쳤다고 했다. 최근 우면산 안팎에서 벌인 각종 공사가 산사태를 불렀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홍수 안전지대라고 자부했는데, 이런 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산을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곳이 하천길이다. 원래 하천이 다니는 곳을 메워서 만든 도로다.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모(55·여)씨도 "근래들어 우면산 개발이 너무 많았다"며 "이를테면 예술의 전당, 우면산 터널, 생태공원, 관문사 등 개발로 인해 산이 많이 상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개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산사태로 주민 6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한 남태령 전원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남태령역 부근에서부터 전원마을 입구에까지 쌓여있는 20㎝높이의 토사가 이번 산사태의 위력을 짐작케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우면산 자락을 뒤덮었을 나무들은 가지가 잘린 채 엉성하게 뒤엉켜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물에 젖은 토사가 무덤처럼 솟아 있었다. 주민들은 소방대원들과 함께 집안 곳곳에 진흙을 퍼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면산 자락에 있던 비닐하우스 6채는 갈퀴가 할킨 듯 골격만 남아있을 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옆쪽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는 한 장의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마을 중간에는 산사태의 위력을 보여주 듯 뒤집힌 유조차 1대 위에 1t 트럭이 올라간 채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다. 유조차에서 흘러 나온 휘발유는 코 끝을 찌를 만큼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산사태로 무너진 담벼락을 손보고 있던 주민 손모(51·여)씨는 "담벼락이 '와락'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쓰나미처럼 빗물과 토사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왔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남편과 딸과 함께 서둘러 집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강남에서 이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참혹한 산사태 현장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던 조철원(63)씨는 주민들 중 가장 먼저 이번 사고를 겪었다고 전했다.
조씨는 "토사가 빗물에 섞여 빠르게 휩쓸려 내려오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면서 "발을 겨우 뻗어 길가에 있던 이불을 잡아 간신히 살 수 있었다"며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아찔해했다.
8년전 이사왔다는 주민 이모(69·여)씨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도 안 먹고 토사를 치우고 있다"며 "그런데 구청은 뭐하고 있는 거냐. 최소한 몸이라도 씻을 수 있게 물은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한편 이날 산사태로 우면동 형촌마을과 방배동 전원마을, 방배동 S아파트 등에서 현재까지 1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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