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군사독재 종지부'

안정섭 / / 기사승인 : 2011-06-09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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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쟁취ㆍ민주화 도약··· 민중승리 역사 커다란 전환점 평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 '기폭제'
6·10민주항쟁은 군사독재 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화를 한 단계 도약시킨 민중 승리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국적으로 국민의 힘을 모아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점은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항쟁에 이은 민중 봉기의 완성본으로 기록된다.
제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은 1985년 간선제로 선출됐다. 전 대통령의 군부 정권은 도덕성 결여와 비민주성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었고 이는 야권과 재야세력의 직선제 개헌 공세 대상이 됐다.
1986년 개헌 서명운동에 1000만명이 동참했고 여야가 헌법 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13일 개헌 논의를 중단시킨 이른바 '4·13 호헌(護憲) 조치'를 통해 독재군부정권 유지 뜻을 천명한다.
이는 곧 전국 단위의 대규모 군중 집회의 불씨가 됐다.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정부 당국은 1월14일 경찰 심문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박군을 숨지게 하고도 이를 축소·은폐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의해 밝혀졌고 국민은 분노했다.
5월27일 꾸려진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는 6월10일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개최했다. 박군의 고문치사 사건 조작·은폐를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대회였다.
주요 도시 곳곳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로 거리가 메워졌다. 주요 도로 곳곳의 교통이 마비됐지만 시민들은 시위대를 지지하며 손수건과 자동차 경적으로 호응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는 전국에서 울려퍼졌다. 이날만 22개 지역에서 24만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했다. 경찰에 연행된 시위대도 수천명에 달했다. 구속된 이들은 국본 간부를 포함한 220여명이다.
대항쟁은 멈추지 않았다. 5일여 동안 명동성당에서 집회가 이어졌고 낮에는 넥타이부대와 일반시민들이 지원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6월15일 다시 전국적으로 되살아난 불씨는 26일 전국 30여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까지 계속됐다. 이때까지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50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결국 전 대통령은 이에 굴복, 민주정의당(민정당) 노태우 당시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한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는 민중의 힘으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킨 1960년 4·19혁명과 같이,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한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과 같이 민중 역사의 한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송동현 과장은 "6월 민주항쟁은 4·19혁명 이후 30여년간 이어진 민주화 운동 흐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송 과장은 "4·19혁명은 성공했지만 1년 뒤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빛을 바랜 측면이 있고 5·18민중항쟁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측면이 있다"며 "6·10민주항쟁은 전국 단위의 궐기였고 군부독재에 종지부를 찍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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