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기업형 슈퍼마켓(SSM) 롯데슈퍼 원효로점이 서울 용산구 문배동 주상복합건물 지하 1층에 200평 규모로 개점하자 인근 영세상인들은 "푼돈에 눈먼 대기업의 횡포"라며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개점한 지 하루가 지난 22일 오후 롯데슈퍼 원효로점을 찾았다. 슈퍼는 상품을 설명하는 홍보도우미들과 상품을 구경하는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개점을 기념하는 화려한 이벤트를 지켜보는 인근 상인들의 얼굴에는 한결 같이 분노가 서려있었다.
이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롯데슈퍼의 개점이 정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롯데슈퍼 개점 공사기간 동안 공사가림막에는 '스시뷔페식당 입점 예정'이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었다. 21일 개점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인근에서 A슈퍼마켓을 운영한다는 성모씨(47)는 "무슨 대기업이 쥐××도 아니고 위장막까지 쳐서 기습 입점을 하느냐"며 "롯데같은 대기업이 지역상권마저 장악하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롯데슈퍼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8년 째 B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씨(73·여)는 "대기업인 롯데가 하루에 10만원도 벌기 힘든 중소상인들을 길바닥을 내쫓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만든다는 공정사회는 대기업과 가진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C슈퍼마켓을 20여년 째 운영하고 있다는 이모씨(60·여)는 "벌써 단골이었던 손님들이 롯데슈퍼가 물건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500㎖ 음료의 경우 롯데슈퍼에서는 980원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인근 영세슈퍼마켓 에서는 1400~1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음료의 도매 가격은 850~1100원 수준. 처음부터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지난 7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시설교체지원비 120만원를 지원받아 인테리어를 새롭게 한 E식품점 업주 김모씨(47)는 "롯데가 자기들 배만 부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세 상인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입점을 강행했다"며 "자본을 동원해 골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롯데슈퍼 앞에 영세 상인들은 풍전등화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영세상인들은 앞으로 롯데슈퍼와의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8년 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4)는 "우리같은 중소상인들이 롯데같은 대기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면서도 "인근 상인들과 연계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신청권을 내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롯데슈퍼로 인해 500여m 떨어진 용문시장상인들도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용문시장 상인들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중소기업청과 롯데슈퍼에 상품과 영업시간 제한등과 같은 현실적인 개선책들을 적극적으로 요구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슈퍼가 개점한지 하루 밖에 안 됐지만 벌써 인근 상인 50여명이 사업조정신청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다.
상인들과 동거동락했던 토박이 주민들도 상인들의 비난에 가세했다.
문배동에 1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최숙자씨(48·여)는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국가는 중소 상인들을 말로만 보호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문동에서 15년째 살고 있다는 김동일씨(56)는 "롯데슈퍼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슈퍼와 개념이 완전 다르다"며 "사실상 대형마트가 들어왔다. 나와 같은 서민층이 운영하는 군소 가게들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롯데측은 당분간 슈퍼개점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롯데슈퍼 판촉 홍보팀 관계자는 "시행사측에서 알림판에 스시뷔페식당이 입점한다고 붙였던 것 같다"며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지난 15일 알림판을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충분히 검토한 결과 인근 상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개점했을 뿐, 기습 개점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앞으로 다른 곳의 개점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롯데슈퍼는 지난 11일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을 개장을 앞두고 공사기간 동안 '피자가게 개점 예정'이라는 현수막을 외부에 붙여놓았다가 다음날 새벽에 기습 개점을 강행해 주변 상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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