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한일강제병합 전후 600억 축재

진용준 / / 기사승인 : 2010-07-22 18: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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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대가로 15년만에 재산 3배 늘어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이 100년 전 한일 강제병합 전후로 6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가 발간한 '백서'에 따르면 이완용은 한일병합 전후 토지 취득과 처분 과정에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해 1925년 당시 최소 300만원(현시가 600억원) 이상을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완용은 항일병합 전후 일제와 황실로부터 받은 은사금과 하사금, 뇌물, 횡령 등으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한일신협약' 대가로 10만원, 1910년 '한일합병조약' 대가로 15만원을 수령하는 등 일제로부터 각종 은사금과 하사금을 받았다. 총리대신 재직 시에는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인에게 내주는 대가로 1만5000달러를 받고, 한미 전기회사 설립을 위해 옥새를 위조해 고종의 내탕금 40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일병합 당시 이완용의 재산은 100만원(현시가 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그는 일제로부터 받은 토지를 비롯해 무상으로 대부받은 국유지를 제3자에게 매각해 차익을 챙기는 수법으로 재산을 불렸다.

그 결과 일제초기 토지보유 규모는 약 1573만㎡로 현재 여의도 면적의 약 1.9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15년이 지난 1925년 그의 재산은 3배가 늘어난 300만원(현시가 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의 재산으로 남아있는 토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완용은 토지의 98%를 해방 전 일본인 4명에게 매각했고, 이 토지는 해방 이후 모두 귀속농지로 몰수돼 신한공사가 관리하다가 미군정에 의해 1948년 모두 한국인 소작농에 분배됐다.

나머지 토지 2%는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제3자에게 매각됐으며, 일부는 그의 후손들이 소송을 통해 되찾아가기도 했다.

친일재산조사위 관계자는 "이완용 일가는 당시 일제에 적극 협력하고 각종 친일단체에 가입하면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렸다"며 "특히 이완용은 '경성 최대의 현금부호'라고 불릴 만큼 큰 부를 이뤘다"고 말했다.

한편, 이완용의 재산 중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진 토지는 1만928㎡, 공시지가로 7000만원 상당이며, 후손이 소유한 토지까지 합치면 총 1만9043㎡, 1억1810만원 상당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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