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희생자 범국민장 엄수

차재호 / / 기사승인 : 2010-01-09 19: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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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발생 355일만에 영결식 열려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9일 범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유족들은 눈물과 슬픔 속에 용산참사 발생 355일 만에 고인들을 떠나보냈다.

이날 오후 서울역광장에서는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장례위) 주최로 고인들의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은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 용산구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운구행렬이 도착한 낮 12시께 시작됐다.

유족들과 장례위원,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인사, 시민 등 5000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추산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결식은 김태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개식선언과 열사약력 보고, 경과보고, 조사, 조가, 진혼무, 유가족 인사, 분향과 헌화 등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송영길 최고위원,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 전 의장, 무소속 정동영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이정희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심상정 전 대표 등 다수의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희생자 5명의 영정사진과 국화꽃이 놓여있는 무대에는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이라고 적힌 근조 플래카드가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영결식장 곳곳에는 '서러워서 못가겠다', '열사여 부활하라' 등이 적힌 노랗고 빨간 만장 60여개가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또 '민중해방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살인진압 진상규명' 등이 적힌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무대 앞 쪽에 앉은 유족들은 영결식 내내 침통한 표정이 역력했고, 눈시울을 붉힌 채 연신 손수건으로 참았던 눈물을 훔치며 오열했다.

정세균 대표는 조사에서 "당신들의 자리에 치솟은 콘크리트 절벽에 눈물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며 "당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낸 이유를 분명히 밝히겠다"고 밝혔다.

이강실 상임장례위원장은 조사에서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살인적인 재개발 정책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 일은 남은 사람에게 맡기고 편안히 잠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배은심 회장, 야4당 대표 등도 조사를 발표했으며, 가수 안치환씨는 조가를 불렀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니 또다시 가슴에 찬바람이 휑하고 지나가고 갖가지 회한이 밀려온다"며 "저희 유족들은 오늘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전씨는 이어 "진실을 밝혀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내 아들, 우리의 동지들이 하루 빨리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영결식 마지막 순서로 유족들과 장례위원들, 시민 등은 준비된 국화꽃 1000송이를 고인들의 영정사진 앞에 헌화했다.

이윽고 영정사진 앞에 흰 국화꽃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하자, 이에 응답하듯 하늘에서도 하얀 눈발이 날리면서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례위는 영결식을 마친 뒤 오후 2시50분께 노제를 위해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과 장례위 간 말다툼과 가벼운 몸싸움 등 마찰이 발생해 운구행렬은 서울역광장을 출발한 지 2시간30여분 지나서야 남일당에 도착했다.

당초 예정보다 늦은 오후 5시20분께 시작된 노제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된 뒤, 오후 6시20분께 마무리됐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노제에서 "차갑게 얼어붙은 남편의 시신이 1년 만에 한 서린 용산에 돌아왔다"며 "용산을 뒤로 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고인들의 시신은 오후 8시께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앞서 이날 오전 9시부터는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발인식이 거행됐다.

발인식은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으며 결국 유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면서 장례식장에는 오열하는 유족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유족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며 슬픔을 쏟아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떠나가는 운구차를 바라보며 "가지마, 가지마"를 외치다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영숙씨는 관을 부여 잡고 "아빠 어떡하냐"고 울부짖으며, 아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발인식은 오전 10시30분께 마쳤으며, 운구행렬은 순천향병원~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를 지나 서울역광장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운구행렬 도중 중구 명동성당을 방문해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박래군·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과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 등 3명의 수배자들을 만나 위로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한편,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역광장 인근에서는 대한어버이연합과 보수국민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 성향 시민단체 회원 200여명이 용산참사 희생장 범국민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장례위측과 충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경찰은 이날 서울역광장 인근에 44개 중대 등 총 67개 중대 5000여명의 병력을 도심 곳곳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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